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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600758
한자 洪明善
이칭/별칭 홍명선(洪明先)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기도 화성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이혜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0년 1월 26일연표보기 - 홍명선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26일~28일 - 홍명선 송산면 독립만세시위 참가
몰년 시기/일시 1974년 7월 7일연표보기 - 홍명선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홍명선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출생지 경기도 수원군 송산면 사강리[현 화성시 송산면 사강리] 584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가계]

아버지는 홍우석, 어머니는 박일원, 홍문선(洪文善)은 이복형제이다.

[활동 사항]

홍명선(洪明善)[1900~1974]은 1900년 1월 26일 경기도 수원군 송산면 사강리[현 화성시 송산면 사강리] 584번지에서 홍우석의 3남으로 태어났다. 홍명선(洪明先)이라고도 불렸다. 1919년 3월 26일부터 28일까지 송산면 사강리에서는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홍명선도 만세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는데, 3월 26일 정오 경 나무를 하러 갔다 오다가 사강리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난 것을 보고 참여하여 독립만세를 불렀으며, 3월 28일에도 시장과 송산면사무소 뒷산에서 일어난 독립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만세시위를 탄압하기 위하여 출동한 순사부장 노구치 고조[野口廣三]가 탄압 과정에서 홍면옥(洪冕玉)에게 총상을 입혔고, 이에 분노한 군중은 그를 처단하기로 하였다. 홍명선왕광연(王光演)·홍남후(洪南厚)·홍문선(洪文善)· 홍관후(洪寬厚) 등과 함께 도망가는 노구치 고조를 쫓아 가서 그에게 돌을 던지고 몽둥이로 난타하여 처단하였다. 1920년 4월 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손자 홍세화의 구술 증언에 따르면, 출소 후에 고향에서 한문을 가르쳤고, 해방 이후에는 영등포에서 사법소사로 일하였다고 한다. 1974년 7월 7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송산면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공적이 확인되어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홍면 등 32인 판결문」(경성지방법원, 1920. 4. 7.)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홍명선」(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 21(국사편찬위원회, 1995)
  • 『독립유공자 후손 구술자료집』 -화성의 3.1운동과 나의 삶(화성시, 2017)
  • 공훈전자사료관(https://e-gonghun.mpva.go.kr)
  • 국사편찬위원회 삼일운동 데이터베이스(http://db.history.go.kr/sam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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