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07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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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洪寬厚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혜린 |
출생 시기/일시 | 1890년 11월 5일 - 홍관후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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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28일 - 홍관후 송산면 만세시위 참여 |
몰년 시기/일시 | 1971년 5월 13일 - 홍관후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홍관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
출생지 | 경기도 수원군 송산면 삼존리[현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삼존리] 235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홍관후(洪寬厚)[1890~1971]는 1890년 11월 5일 경기도 수원군 송산면 삼존리[현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삼존리] 235번지에서 홍근(洪瑾)의 3남으로 출생하였다. 1919년 3월 28일 송산면사무소 뒷산과 그 부근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홍문선(洪文善)·홍남후(洪南厚)·홍승한(洪承漢) 등 1,000여명의 군중과 함께 국권회복을 위하여 태극기를 게양하고 조선독립을 고창하였다. 이들을 탄압하기 위하여 출동한 일본인 순사 노구치 고조[野口廣三]가 홍면옥(洪冕玉)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총상을 입히자, 왕광연(王光演)·홍면선·홍남후·홍문선 등은 노구치 고조에게 돌을 던지고 몽둥이로 난타하여 처단하였다. 이로 인해 1920년 4월 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요, 살인, 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7년의 판결을 받았다. 1971년 5월 13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송산면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공적이 확인되어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