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07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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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車炳赫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혜린 |
출생 시기/일시 | 1889년 12월 11일 - 차병혁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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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2일 - 차병혁 장안면·우정면 각 산에 봉화를 올리고 만세를 부름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3일 - 차병혁 장안면·우정면 일대의 독립만세운동 주도 |
몰년 시기/일시 | 1967년 2월 4일 - 차병혁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62년 - 차병혁 건국훈장 독립장 서훈 |
출생지 | 경기도 수원군 장안면 석포리[현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석포리] 537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우정면 일대의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차병혁(車炳赫)[1889~1967]은 1889년 12월 11일 경기도 수원군 장안면 석포리[현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석포리] 537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일 이후 전국적인 만세시위운동이 확산되자, 차희식(車喜植)·차병한(車炳漢)과 함께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1919년 4월 2일 장안면과 우정면 각 산에 봉화를 올리고 만세를 불렀다. 다음날인 1919년 4월 3일 차병한과 함께 장안면 어은리에 있는 장안면사무소로 가서 면장 김현묵(金賢黙)에게 ‘오늘 우정면에 있는 쌍봉산에서 조선 독립을 위하여 만세를 외쳐야한다’라고 하고, 이영쇠(李永釗)·윤영선(尹永善) 등 면사무소 앞에 모인 군중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쳤다. 또한 차병혁은 '사무소의 서류를 불태워 버려라'고 하며, 집기를 가지고 나와 불태우고 장안면사무소를 부수었다. 또한 우정면사무소와 화수리 경찰관주재소를 파괴하였는데, 주재소 안에 있던 조선총독부 순사 가와바타 도요타로[川端豊太郞]가 총을 쏘며 도망쳐 나오자, 군중들이 그를 추격하여 구타하여 처단하였다. 이에 차병혁은 1920년 12월 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소요, 살인, 방화 등의 혐의로 징역 3년의 판결을 받아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1967년 2월 4일 오전 5시 경기도 화성군 장안면 석포리의 자택에서 노환으로 사망하였다. 장례식은 1967년 2월 8일 자택에서 '광복회 동지장'으로 거행되었다.
[상훈과 추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