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07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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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車炳漢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혜린 |
출생 시기/일시 | 1885년 11월 12일 - 차병한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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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3일 - 차병한 장안면·우정면 독립만세시위 주도 |
몰년 시기/일시 | 1933년 2월 22일 - 차병한 사망 |
출생지 | 경기도 수원군 장안면 석포리[현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석포리] 522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경기도 화성시 장안·우정면 일대의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차병한(車炳漢)[1885~1933]은 1885년 11월 12일 경기도 수원군 장안면 석포리[현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석포리] 522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일 이후 전국적인 만세시위가 일어나자, 석포리의 구장으로서 차희식(車喜植)·차병혁(車炳赫)과 장안면·우정면 일대의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1919년 4월 3일 장안면 어은리에 있는 장안면사무소로 가서 면장 김현묵(金賢黙)에게 ‘쌍봉산에서 조선의 독립을 목적으로 만세를 외쳐야한다’라면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차병한은 이영쇠(李永釗)·이영선(尹永善)·김흥삼(金興三)·인수만(印壽萬) 등과 함께 쌍봉산(雙峯山)에 올라 독립만세를 외치고, 이어 우정면사무소와 화수리 경찰관주재소로 향하였다. 화수리 경찰관주재소에 모인 군중을 지휘하여 주재소에 돌을 던지고 불을 지르도록 하였다. 주재소 안에 있던 조선총독부 순사 가와바타 도요타로[川端豊太郞]가 총을 쏘며 도망쳐 나오자, 군중들은 가와바타 도요타로를 추격하여 돌을 던지고 몽둥이로 쳐서 처단하였다. 이에 1920년 12월 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소요, 살인, 방화 등의 혐의로 징역 5년의 판결을 받아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1933년 11월 12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