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07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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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淳榮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혜린 |
출생 시기/일시 | 1868년 2월 2일 - 정순영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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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3일 - 정순영 장안면·우정면 독립만세시위 참여 |
활동 시기/일시 | 1920년 12월 9일 - 정순영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5년 선고 |
몰년 시기/일시 | 1944년 11월 8일 - 정순영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1년 - 정순영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
출생지 | 경기도 수원군 장안면 수촌리[현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수촌리] 681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우정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정순영(鄭淳榮)[1868~1944]은 1868년 2월 2일 태어났다. 거주지는 경기도 수원군 장안면 수촌리[현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수촌리] 681번지이다. 1919년 4월 3일 장안면 석포리의 구장직에 있으면서 독립만세시위를 주동하였다. 조암 장터에 모인 2,0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고창하였고, 장안면사무소로 가서 면장에게 시위에 동참할 것을 요구하였다. 정순영은 몽둥이를 휘두르면서 '일동이 이렇게 왔으니 힘껏 활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들은 오늘이 이 세상에서 밥을 먹는 마지막이다.', '경복궁도 화재가 나서 불타지 않았는가. 면사무소가 무슨 필요가 있는가'라고 말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면장이 시위 동참을 거부하자, 면사무소를 파괴하였다. 이후 우정면사무소에 가서도 서류를 소각하는 등의 격렬한 시위를 벌였고, 도망가는 순사 가와바타 도요타로[川端豊太郞]를 처단하였다. 1920년 12월 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1944년 11월 8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