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07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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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林八龍 |
이칭/별칭 | 林龍甫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혜린 |
출생 시기/일시 | 1888년 12월 2일 - 임팔룡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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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26일 - 임팔룡 송산면사무소 앞에서 만세시위운동 참여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28일 - 임팔룡 순사 노구치 고조 처단 |
몰년 시기/일시 | 1921년 8월 25일 - 임팔룡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13년 - 임팔룡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
거주|이주지 | 경기도 수원군 송산면 사강리[현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사강리] 647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가계]
임팔룡(林八龍)[1888~1921)은 1888년 12월 2일 태어났다. 본적은 경기도 수원군 송산면 사강리[현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사강리] 647번지이며, 이명은 임용보(林龍甫)이다. 1919년 3월 26일 송산면사무소 부근에서 태극기를 게양하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이틀 뒤인 3월 28일에도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송산면사무소 뒷산과 그 부근에서 1,0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국권 회복을 목표로 조선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순사 노구치 고조[野口廣三]가 홍면옥(洪冕玉)에게 총을 쏘자, 군중과 함께 노구치 고조에게 돌을 던져 처단하는데 가담하였다. 1919년 4월 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요, 보안법 위반, 살인 등의 혐의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1921년 8월 25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송산면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공적이 확인되어 2013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