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07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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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秀山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혜린 |
출생 시기/일시 | 1891년 11월 20일 - 유수산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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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3일 - 유수산 장안·우정면 독립만세운동 참여 |
몰년 시기/일시 | 1951년 6월 20일 - 유수산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06년 - 유수산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거주|이주지 | 경기도 수원군 장안면 사곡리[현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사곡리] 442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경기도 화성시 장안·우정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유수산(柳秀山)[1891~1951]은 1891년 11월 20일 경기도 수원군 장안면 사곡리[현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사곡리] 442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3일 경기도 수원군 장안면과 우정면에서는 차희식(車喜植)·차병혁(車炳赫)·차병한(車炳漢) 등이 주도한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유수산은 2,0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만세시위에 참여하여 장안면사무소를 향하여 돌을 던지고 몽둥이로 문을 파괴하였다. 이후 우정면사무소로 몰려가 독립만세를 외쳤고 쌍봉산(雙峯山)에서도 만세시위를 하였다. 또한 화수리 경찰관주재소를 불태웠는데, 주재소 안에 있던 조선총독부 순사 가와바타 도요타로[川端豊太郞]가 총을 쏘며 도망쳐 나왔다. 군중은 그를 쫓아 몽둥이로 구타하여 처단하였다. 유수산은 1920년 12월 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벌금 20원을 선고받았다. 1951년 6월 20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