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07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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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吳光得 |
이칭/별칭 | 金景源,金京雲,金景源,金京雲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혜린 |
출생 시기/일시 | 1879년 12월 23일 - 오광득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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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28일 - 오광득 송산면 독립만세운동 참여 |
몰년 시기/일시 | 1947년 5월 5일 - 오광득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04년 - 오광득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
거주|이주지 | 경기도 수원군 송산면 사강리 607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오광득(吳光得)[1879~1947]은 1897년 12월 23일 경성부(京城府)[현 서울특별시]에서 출생하여 경기도 수원군 송산면[현 화성시 송산면] 사강리에 거주하였다. '광득'이라는 이름 이외에 '경운(京雲)', '경원(景源)'이라고도 불렸다. 1919년 3월 28일 오후 2시경 송산면사무소 뒷산과 그 부근에서 1,0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국권 회복을 목적으로 독립만세를 외쳤다. 같은 날 오후 3시 반 경 시위를 진압하기 위하여 출동한 순사부장 노구치 고조[野口廣三]에게 만세운동을 주동한 홍면옥(洪冕玉)이 피격되자,송산면 사강리 경찰관주재소 근방에서 군중과 함께 노구치 고조에게 돌과 기와 쪽을 투척하고 몽둥이로 난타하여 처단하였다. 이 사건으로 1920년 4월 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요, 보안법 위반, 살인 등의 혐의로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1947년 5월 5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송산면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공적이 확인되어 2004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