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07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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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呂大鉉 |
이칭/별칭 | 금원대현(金原大鉉)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박철웅 |
[정의]
경기도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여대현(呂大鉉)[1918~1991]은 1918년 4월 4일 태어났다. 1941년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 재학 당시, 일본에서 항일 비밀결사 효민회(曉民會)를 이끌고 활동하던 최홍준(崔弘俊)과 만나게 되었다. 최홍준은 여대현에게 일본에서의 민족 차별의 실상에 대해 전해들었고, 식민통치의 부당성에 항거하기로 결심하였다. 여대현과 최홍준은 독립을 위하여 민족의 지도자가 될 것을 맹세하며 민족문화와 경제력 향상에 힘쓰고 조선어연구를 통한 민중계몽 활동을 전개하였다.
1943년 2월 서울 성북동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최홍준·성장환(成章煥) 등과 함께 독립운동을 결의하였다. 이후 독립운동의 방안을 모색하고 동지를 포섭하는 활동을 하다가,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1944년 1월 대구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1991년 5월 11일 사망하였다.
[묘소]
1991년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소에 안장되었다.
[상훈과 추모]
독립운동 활동을 하다가 옥고를 치른 사실이 확인되어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