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06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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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宋聲浩 |
이칭/별칭 | 송세진(宋世振)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박철웅 |
[정의]
경기도 화성시 장안·우정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송성호(宋聲浩)[1856~1919]는 1856년 경기도 수원군 우정면[현 화성시 우정읍] 화수리에서 태어났다. 송세진(宋世振)으로도 불렸다. 1919년 4월 3일에 일어난 장안면(長安面)·우정면(雨汀面)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날 시위는 2천여 명의 군중이 조암(朝岩) 장터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면서 시작되었다. 시위 군중은 독립만세를 외치며 장안면 사무소로 행진하였고, 면장 김현묵(金賢默)을 앞세워 쌍봉산(雙峯山)에 올라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어 시위대는 우정면으로 이동하여 우정면사무소를 파괴하였으며, 화수리 경찰관주재소를 습격하여 일본인 순사 가와바타 도요타로[川端豊太郞]를 처단하고, 화수리 경찰관주재소를 불태웠다. 시위의 진압 및 주동자 검거를 위해 일제는 4월 4일부터 화성군 일대에 군대를 투입해 방화와 학살, 고문 등의 보복을 자행하였다. 이러한 진압은 17일까지 계속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송성호는 일제의 총에 맞아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