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06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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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文相翊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박철웅 |
출생 시기/일시 | 1893년 7월 3일 - 문상익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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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1년 8월 - 문상익 경성토지국 기사로 근무 |
활동 시기/일시 | 1917년 7월 - 문상익 송산면 서기로 근무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26일 - 문상익 송산면 독립만세운동 참여 |
몰년 시기/일시 | 1960년 10월 15일 - 문상익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77년 - 문상익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
거주|이주지 | 경기도 화성군 송산면 사강리 510번지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문상익(文相翊)[1893~1960]은 1893년 7월 3일 태어났다. 본적은 경기도 화성군 송산면 사강리 510번지이다. 남양의 사립 보홍학교에서 1년여 동안 신학문을 배운 뒤, 1911년 8월부터 1916년 11월까지 경성토지조사국의 기사로 근무하였다.
1917년 7월부터 송산면 서기로 근무하던 중, 1919년 3월 26일 홍면옥(洪冕玉)이 주동한 송산면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28일 오후, 일본인 순사부장 노구치 고조[野口廣三]는 시위 주동자 홍면옥을 체포하여 꿇어 앉혔다. 홍면옥이 제지를 뿌리치고 일어나 독립만세를 외치자, 노구치 고조는 홍면옥의 어깨에 총을 쏘았다. 이를 본 시위 군중들은 크게 분노하였고, 문상익은 홍면옥의 장인 김명제(金命濟)와 함께 도망치는 노구치 고조를 추격하여 처단하는 등 격렬하게 독립만세운동을 벌이다 체포되었다. 1920년 7월 5일 고등법원에서 소요, 살인, 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12년을 선고 받았다.
1960년 10월 15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송산면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공적이 확인되어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