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06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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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周業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박철웅 |
[정의]
경기도 화성시 향남면 제암리·고주리 학살 사건으로 순국한 독립운동가.
[가계]
[활동 사항]
김주업(金周業)[?~1919]은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 고주리에서 태어났다. 제암리사건으로 순국한 김세열(金世烈)의 아들이다. 김세열의 형 김성열(金聖烈)은 1919년 4월 5일 향남면(鄕南面) 발안리(發安里) 장날에 안상용(安相容)·안진순(安珍淳)·안봉순(安鳳淳)·김덕용(金德用) 등과 함께 독립만세시위를 주동하였다. 1919년의 화성 지역은 3월 하순부터 4월 중순까지 송산면(松山面), 장안(長安)·우정면(雨汀面), 팔탄면(八灘面) 등 전 지역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일제는 화성 지역의 만세운동을 진압하기 위하여 무차별 방화와 학살, 고문 등 무자비한 보복을 자행하였다. 1919년 4월 15일 일본군 아리타 도시오[有田俊夫] 중위는 제암리 주민들을 제암리교회로 모이게 한 뒤, 집중 사격을 명령하였다. 김성열은 이때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일본군은 인근의 고주리에 위치한 김성열의 일가 6인도 학살하였는데, 김주업 또한 이때 아버지 김세열과 함께 일본군에게 참변을 당하였다.
[상훈과 추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