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06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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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洪元植夫人 金氏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박철웅 |
[정의]
경기도 화성시 향남면 제암리사건으로 순국한 독립운동가.
[가계]
[활동 사항]
홍원식부인 김씨(洪元植夫人 金氏)[?~1919]는 1919년 3월 31일 향남면(鄕南面) 발안리(發安里) 장날에 일어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김씨의 남편 홍원식은 대한제국 서울 시위대 제1대대 군인으로, 1907년 일제에 의해 대한제국 군대가 강제해산 당하자, 충청남도 지역을 비롯한 각처에서 의병장으로 활동하였다. 1910년 이후 고향 제암리에 돌아와 기독교 권사가 되어 학교를 세우고, 제암리교회의 안종후와 천도교인 김성렬등과 구국동지회를 결성하였다.
1919년의 화성 지역은 3월 하순부터 4월 중순까지 송산면(松山面), 장안(長安)·우정면(雨汀面), 팔탄면(八灘面) 등 전 지역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일제는 화성 지역의 만세운동을 진압하기 위하여 방화와 학살, 고문 등의 보복을 자행하였다. 1919년 4월 15일 일본군 아리타 도시오[有田俊夫] 중위는 제암리 주민들을 제암리교회로 모이게 한 뒤 집중사격을 명령하였고, 현장에 김씨의 남편 홍원식도 있었다. 김씨는 홍원식을 구하려 현장에서 항거하다가, 일본군의 발포로 남편 홍원식과 함께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제암리사건으로 순국한 사실이 확인되어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