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06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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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聖烈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박철웅 |
[정의]
경기도 화성시 제암리·고주리 학살 사건으로 순국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김성열(金聖烈)[1871~1919]은 1871년 11월 3일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 고주리에서 태어났다. 천도교 전도사로 활동하였으며, 1907년 충청남도에서 의병 활동을 하였던 홍원식(洪元植)이 1914년 제암리에 이주하여 구국동지회를 결성하자, 이에 동참하였다. 1919년 3월 31일 향남면(鄕南面) 발안리(發安里) 장날에 안상용(安相容)·안진순(安珍淳)·안봉순(安鳳淳)·김덕용(金德用)·강태성(姜太成) 등과 함께 만세시위를 주동하였다. 1919년의 화성 지역은 3월 하순부터 4월 중순까지 송산면(松山面), 장안(長安)·우정면(雨汀面), 팔탄면(八灘面) 등 전 지역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일제는 화성 지역의 만세운동을 진압하기 위하여 방화와 학살, 고문 등의 보복을 자행하였다. 1919년 4월 15일 일본군 아리타 도시오[有田俊夫] 중위는 제암리 주민들을 제암리교회로 모이게 한 뒤, 집중 사격을 명령하였는데, 이때 23명이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곧이어 일본군은 인근 고주리(高舟里)로 이동하여 김성열의 일가 6명을 학살하였고, 김성열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