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06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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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敎哲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박철웅 |
[정의]
경기도 화성시 장안·우정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김교철(金敎哲)[1880~1955]은 1880년 7월 27일에 태어났다. 1911년 배재학당, 1912년 피어슨 성경학원 등에서 수학하였다. 1914년에 공부를 마치고 고향에 돌아와 장진의숙을 설립하였으며, 남양교회 담임전도사로 활동하였다. 1919년 4월 3일 장안(長安)·우정면(雨汀面) 일대에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합류하여 면사무소를 파괴하였고, 시위 군중들과 함께 화수리(花樹里) 경찰관주재소를 습격하여 순사 가와바타 도요타로[川端豊太郞]를 처단하였다. 4월 3일의 만세시위 후 체포되어, 1920년 12월 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소요, 살인, 방화 등의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1955년 10월 6일에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장안·우정면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공적이 확인되어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