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06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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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陳希西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박철웅 |
[정의]
경기도 화성 지역에서 활동한 개항기 의병.
[활동 사항]
진희서(陳希西)[1883~?]는 1883년에 태어났다. 1907년 7월 24일, 일제는 헤이그 특사 파견을 빌미삼아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켰다. 7월 31일에는 군대해산 조칙을 순종을 통해 내렸는데, 나라의 무장력이 해체된 상황에서 대한제국 군인들은 항일 의병투쟁에 참여하게 되었다. 진희서는 1907년 음력 11월 30일 유성구(劉成九)와 함께 홍순래(洪順來)의 의병진(義兵陣)에 참여하였다. 이날 진희서는 수원군 발안면[현 화성시 향남읍 발안리] 장날에 성씨(成氏)의 집에서 화승총 한 자루를 군수품으로 거두었으며, 이어 아재동(雅才洞) 안씨(安氏)의 집에서 군자금 10원을 모금하였다. 산성(山城) 원씨(元氏)의 집에서는 서양총 1자루, 화약, 탄약을 거두었다.
1908년 음력 3월 3일에는 의병 7명과 함게 산척리(山尺里) 이씨(李氏)의 집에서 12원을 모금하고 군자금으로 100원을 추후 찾아가겠다는 의미로 증표를 받아갔다. 이어 최씨(崔氏)의 집에서 군자금 100원을 거둔다는 증표를 받다가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진희서는 1908년 3월 20일 경기재판소에서 내란죄로 15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의병으로 활동한 사실이 확인되어 2017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