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06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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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馬光洙 |
이칭/별칭 | 광마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철웅 |
[정의]
경기도 화성시 발안면 출신의 문학가이자 대학교수.
[활동 사항]
마광수(馬光洙)[1951~2017]는 1951년 4월 14일, 6·25전쟁 중 1·4 후퇴로 서울에서 피난가던 중 경기도 화성시 발안면에서 태어났다. 유년기에 군속 사진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강원도 화천·인제·양구 등지를 오가며 살았다. 마광수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안전 사고로 사망하였고, 1학년 말에 가족과 함께 서울로 이주하여 청계초등학교를 다녔다. 1963년에 대광중학교와 대광고등학교를 다녔다. 중·고등학교에서 미술반·문학반·연극반 등에서 활동하였다. 마광수는 자서전에서, ‘대광’에서의 동아리 활동이 ‘나의 예술세계를 열어 주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9년 연세대학교 국어국문과에 입학하였다. 대학 재학 중 연극·문학·교지 편집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였다. 1973년 대학을 졸업한 후 대학원에 진학하여, 1975년 「언어표현을 통한 문학의 사회적 효용성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1983년에는 「윤동주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7년 『현대문학』에 「배꼽에」, 「망나니의 노래」, 「고구려」, 「당세풍의 결혼」, 「겁(怯)」, 「장자사(莊子死)」 등 6편의 시가 추천되어 등단하였다. 28세에 홍익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로 부임하여 1979년부터 1983년까지 근무하였다. 1984년 모교인 연세대학교 국어국문과 교수로 부임하였다.
1992년 이른바 ‘즐거운 사라 필화사건’에 휘말리게 되었다. 마광수가 1991년 출간한 소설 『즐거운 사라』는 ‘자유로운 여대생 사라가 다양한 사람과 관계를 갖는다’는 내용으로, 출간 직후부터 외설 논쟁이 있었다. 1992년 10월 29일 『즐거운 사라』가 형법 제243조 및 제244조의 음란물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체포되었다. 1992년 12월 28일 1심 재판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되었다. 이후 항소하였으나, 1995년 6월 16일 대법원에서 상고심을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하였다. 이 일로 1993년 6월 연세대학교에서 해직 처분을 받았다.
1998년 3월 13일에 사면·복권되어, 동년 5월 1일에 연세대학교 교수로 복직하였다. 그러나 2000년 논문 실적 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재임용에 탈락하였다. 학생들의 반발로 재임용 불가 판정은 보류되었으나, 마광수는 복직과 해직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심한 우울증을 앓았다. 2003년에 복직하여 강의와 강연, 문학 활동을 재개하였다. 2007년 4월 『즐거운 사라』를 개인 홈페이지에 올렸다는 이유로 기소되어, 벌금 200만원 형을 판결받았다. 2016년 3월 연세대학교에서 정년퇴임하였다.
2017년 9월 5일 서울 동부이촌동 자택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였다.
[저술 및 작품]
마광수의 대표 작품으로는 시집 『광마집』(1980)·『가자 장미여관으로』(1989년)·『야하디 얄라숑』(2006), 『일평생 연애주의』(2010) 등이 있으며, 소설 『권태』(1990)·『광마일기』(1990)·『즐거운 사라』(1991)·『알라딘의 신기한 램프』1,2 (2000)·『인생은 즐거워』(2015) 등이 있다. 문학이론서 『상징시학』(1980)·『윤동주 연구』(1984)·『마광수 문학론집』(1987)·『삐딱하게 보기』(2006) 등이 있다. 에세이로는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1989)·『남자도 이혼을 꿈꾼다』(1999)·『나의 이력서』(2013) 등이 있다.
[묘소]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분당추모공원 휴에 안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