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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600627
한자 朴長哲
이칭/별칭 추계
분야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경기도 화성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윤성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780년연표보기 - 박장철 출생
활동 시기/일시 1828년 - 박장철 빈민구제 및 환자구호
몰년 시기/일시 1853년연표보기 - 박장철 사망
추모 시기/일시 1874년 - 박장철 종4품의 동몽교관 조봉대부 추증
추모 시기/일시 1885년 - 박장철 효자정문의 교지 받음
사당|배향지 박장철 효자각 - 경기도 화성시 장지안길 1 지도보기
성격 효자
성별
본관 밀양(密陽)

[정의]

조선 후기 경기도 화성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밀양(密陽). 호는 추계(秋溪)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박태동(朴泰東), 할아버지는 박수채(朴受采)이며, 아버지는 박세형(朴世亨)의 맏아들이다. 자식으로 박효준(朴孝駿)·박효기(朴孝驥)·박효상(朴孝相) 삼형제를 두었다.

[활동 사항]

박장철(朴長哲)[1780~?]은 1780년에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성품이 맑고 어질었으며 장성하면서 효성이 극진하여 맛있는 음식을 구하면 반드시 부모가 먼저 드시게 하였다. 아버지가 병환으로 고생하자, 밤낮으로 병간호를 하였으나 차도가 없었다. 이에 추운 겨울에 찬 물로 목욕 재계한 후, 천지신명께 부친의 쾌유를 빌었고, 자신의 마음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항상 반성하였다고 한다. 아버지가 위독하여 영지버섯을 구하러 이웃 마을까지 갔다가, 스님으로 변한 호랑이의 도움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전하여진다. 이웃을 돕는 일에도 몸을 아끼지 않아, 주위 사람들의 칭송이 자자하였다. 갑자기 불이 나서 부모님을 봉양할 곡식이 다 타버릴 위기에 처하였지만,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 불이 꺼진 일이 있었다. 1828년(순조 28) 흉년과 전염병이 창궐하자, 사재(私財)를 털어 빈민구제 및 환자구호에 앞장서, 살아남은 사람이 수백 명이 되어 마을 전체의 칭송을 받았다. 박장철이 세상을 떠나자, 유림(儒林)이 뜻을 모아 고종에게 박장철의 효행과 선행을 상주하였다.

[상훈과 추모]

1874년(고종 11) 종4품의 동몽교관을 추증하는 교지가 내려졌다. 1885년(고종 22) 효자정문(孝子旌門)이 내려져 이듬해 8월 전각이 건립되었다. 박장철 효자각은 1972년 중수되었고, 1986년 화성향토유적으로 지정되었다. 박장철 효자각과 관련하여 「효자 박장철」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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