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06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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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承珪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왕족·호족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윤성재 |
[정의]
고려 전기 경기도 화성시 일대인 수주(水州)에서 활동한 호족.
[가계]
수주 최씨(水州崔氏)의 일원으로 추정된다. 『고려사』나 『세종실록 지리지』 등 기록에는 수주 최씨와 최승규의 직접적인 관계가 드러나지는 않는다. 신라 말 고려 초 본관제의 성립 과정이나 현종 대 활약한 최사위(崔士威), 의종 대 활약한 최유항(崔裒抗) 등 후손의 묘지명에 나타나는 출신을 통하여 같은 가문으로 짐작된다.
[활동 사항]
최승규(崔承珪)[?~?]의 생몰년은 미상이다. 최승규가 활동한 수주(水州)는 원래 고구려의 매홀군(買忽郡)으로, 현재의 경기도 화성시를 포함한 광범위한 지역을 말한다.
『고려사』 지리지에 따르면 수주는 940년(태조 23) 고려 태조가 남쪽을 정벌할 때 고을 사람인 최승규가 김칠 등 200명과 귀순하여 공을 세웠으므로 수주로 승격시키고, 안산현(安山縣)·쌍부현(雙阜縣)·정송현(貞松縣) 등을 소속시켰다고 한다. 기록에는 단순히 고을 사람으로 나왔지만, 수주 지역을 지배하던 호족이었을 것이다. 수주 지역은 고려의 도읍인 개경에서 후백제 방면으로 향하는 육상 교통로의 중간 지대에 있는 요충지로, 전략적 중요성이 높은 지역이었다. 고려 태조는 최승규와 김칠의 귀순으로 좀 더 수월하게 수주 지역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귀순 이후 최승규의 행적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진 것은 없으나, 같이 귀순한 김칠(金柒)이 삼한공신(三韓功臣)에 책봉되고 대상(大相) 벼슬을 지내었으며, 이후 두 가문이 혼인으로 인연을 맺은 것을 보면, 최승규 또한 공신에 책봉되고 비슷한 지위를 갖게 되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