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06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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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七 |
이칭/별칭 | 김칠(金柒)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왕족·호족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윤성재 |
[정의]
고려 전기 경기도 화성시 일대인 수주(水州)의 호족.
[활동 사항]
김칠(金七)[?~?]은 기록에 따라 김칠(金柒)로 나타나기도 한다. 수주(水州)는 원래 고구려의 매홀군(買忽郡)으로, 현재의 경기도 화성시를 포함한 광범위한 지역을 말한다. 『고려사』 지리지에 따르면 수주는 940년(태조 23) 고려 태조가 남쪽을 정벌할 때, 고을 사람인 김칠 최승규 등 200명과 귀순하여 공을 세웠으므로 수주로 승격시키고, 안산현(安山縣)·쌍부현(雙阜縣)·정송현(貞松縣) 등을 소속시켰다고 한다. 수주 지역은 고려의 도읍인 개경에서 후백제 방면으로 향하는 육상 교통로의 중간 지대에 있는 요충지로, 전략적 중요성이 높은 지역이었다. 고려 태조는 최승규와 김칠의 귀순으로 좀 더 수월하게 수주 지역을 확보할 수 있었다. 때문에 김칠은 높은 대우를 받으면서 고려 태조에게 귀순할 수 있었다. 이후 삼한공신(三韓功臣)에 책봉되고 고려 초기에 16등급 가운데 일곱째 품계인 대상(大相)의 벼슬을 지낸 것이 확인된다.
김칠의 이후 행적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진 것은 없으나, 그 영향력은 고려 전기까지 이어졌다. 김칠의 후손으로 인종대 봉선고 부사(奉先庫副使)를 지낸 최정(崔精)이 있는데, 김칠은 최정의 외고조할아버지[外高祖父]가 된다. 1163년(의종 17) 국학학유(國學學諭) 전대여(全代予)가 지은 「최정묘지명(崔精墓誌銘)」에 따르면, “무자년[1108년(예종 3)]에 외고조할아버지이신 삼한공신 대상(三韓功臣 大相) 김칠(金柒)의 음서(蔭敍)로 처음 서리(胥史)가 되었다”고 한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최정은 수주 최씨로, 증조할아버지는 삼중대광 수태사 내사령(三重大匡 守大師 內史令) 정숙공(貞肅公) 최사위(崔士威)이고, 할아버지는 수조산대부 어사중승(守朝散大夫 御史中丞)으로 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에 추봉(追封)된 최충공(崔忠恭)으로, 수주를 대표하는 수원 최씨의 후손이다. 이것은 수주를 기반으로 한 김칠의 가문과 최승규의 가문은 일찍부터 혼인 관계을 맺고 번성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증조할아버지 최사위나 할아버지 최충공이 높은 벼슬을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외고조할아버지의 음서를 받았다는 것은 고려 중기까지도 고려 태조에 귀부한 삼한공신 김칠의 영향력이 지속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