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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600593
한자 趙儆
영어공식명칭 Jo Gyung
이칭/별칭 사척(士惕)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화성시 매송면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송양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31년연표보기 - 조경 출생
활동 시기/일시 1583년 4월 4일 - 조경 무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591년 - 조경 강계부사 임명
활동 시기/일시 1592년 6월 - 조경 경상우도방어사로서 금산에서 왜군과 교전
활동 시기/일시 1592년 7월 4일 - 조경 진주목사 임명
활동 시기/일시 1592년 8월 19일 - 조경 조경 가평전투에서 왜적에게 패전
활동 시기/일시 1592년 9월 21일 - 조경 수원부사 임명
활동 시기/일시 1592년 12월 - 조경 독성전투와 행주대첩에 참가
활동 시기/일시 1593년 5월 24일 - 조경 포도대장 임명
활동 시기/일시 1593년 6월 - 조경 훈련대장으로 활동함
활동 시기/일시 1598년 7월 13일 - 조경 한성부 우윤 임명
활동 시기/일시 1598년 7월 27일 - 조경 한성부 판윤 임명
활동 시기/일시 1599년 4월 18일 - 조경 충청도병마절도사 임명
활동 시기/일시 1599년 6월 4일 - 조경 회령부사 임명
활동 시기/일시 1601년 6월 3일 - 조경 제주목사 임명
활동 시기/일시 1604년 6월 25일 - 조경 선무공신(宣武功臣) 3등에 책록
몰년 시기/일시 1609년 3월 8일연표보기 - 조경 사망
출생지 경기도 화성시 매송면 원리 지도보기
묘소|단소 경기도 안산시 반월동
성격 무관
성별 남성
본관 풍양(豊壤)
대표 관직 수원부사|훈련도감대장|포도대장|충청도병마절도사|회령부사|한성판윤

[정의]

조선 전기 경기도 화성시 매송면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사척(士惕), 시호는 장의(莊毅)이다. 경기도 화성시 매송면에 400년간 집성촌을 이룬 들목 조씨의 일원이다. 아버지는 함경남병사를 지낸 조안국(趙安國)이며, 어머니 안동 권씨(安東權氏)는 생원 권세임의 딸이다.

[활동 사항]

조경(趙儆)[1531~1609]은 1531년(중종 26) 현재의 경기도 화성시 매송면 원리에서 태어났다. 1583년(선조 16) 53세의 늦은 나이로 무과에 합격하고 관직에 나아갔다. 무과 급제 이후 1590년(선조 23)까지 선전관·의주판관·영암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이듬해 강계부사로 전임되었는데, 당시 강계로 유배온 정철(鄭澈)을 우대한 죄목으로 파직되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여러 전투에 참여하여 일본군과 싸웠고, 훈련도감의 대장이 되었다. 1592년(선조 25) 6월 경상우도방어사로서 금산(金山)에서 일본군과 싸웠으나 중과부적으로 패전하였고, 허리와 머리, 겨드랑이에 부상을 입었다. 같은 해 7월 진주목사에 임명되어 8월 가평전투에 참여하였으나, 패전하여 백의종군하게 되었다. 9월에는 다시 수원부사로 발탁되었는데, 권율을 수행하여 독성과 행주산성에서 벌어진 전투에 참가하였다. 독성전투에서는 마대를 인솔하여 성내의 조선군과 안팎으로 협조하여 일본군을 포위·섬멸하였고, 행주대첩 때는 산성에 목책을 두르고 화포를 적극 활용하여 일본군을 격퇴하였다. 조경은 독성과 행주산성에서의 전공으로 가선대부가 되었으며, 5월에는 포도대장으로 임명되었다. 이때부터 훈련원의 도정으로서 훈련도감의 대장을 역임하였다. 조경은 4년가량 대장으로 있으면서 훈련도감이 하나의 군사조직으로 발전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 충청도병마절도사·회령부사·제주목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1604년(선조 37) 임진왜란 당시의 공로를 인정받아, 선무공신 3등인 효충장의선무공신(效忠仗義宣武功臣)에 책록되고, 풍양군(豐壤君)에 봉하여졌다. 1609년(광해군 1) 79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안산시 반월동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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