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05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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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永奎 |
이칭/별칭 | 수성백(隋城伯)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매송면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윤성재 |
활동 시기/일시 | 1261년 - 최영규 문과 급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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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302년 - 최영규 수성백(隋城伯)에 피봉되고 최씨(崔氏) 성을 하사받음 |
묘소|단소 | 수성최씨 시조묘(隋城崔氏 始祖墓) - 경기도 화성시 매송면 숙곡리 산81-1 |
성격 | 관인 |
성별 | 남 |
본관 | 수성(隋城) |
대표 관직 | 호남 안무사|보문각 대경 |
[정의]
경기도 화성시에 속한 수성(隋城)을 본관으로 하는 수성 최씨의 시조.
[가계]
최영규(崔永奎)[?~?]는 신라 경순왕의 후손으로 본래 경주 김씨(慶州金氏)이었으나, 수성 최씨(隋城崔氏)의 시조가 되었다. 수성(隋城)은 수주(水州)의 별호로, 수주는 현재 경기도 화성시의 일부이다. 수원(水原)의 옛 이름이 수성(隋城)인데, 수원 최씨(水原 崔氏)와 수성 최씨(隋城 崔氏)의 혼동을 피하기 위하여 수원 최씨(水原 崔氏)는 원최(原崔)라 하고, 수성 최씨(隋城 崔氏)는 내최(來崔)라고 한다. 김영규가 경기도 화성시에 속한 정송고읍(貞松古邑)에 거주하였기 때문에 정송 최씨(貞松 崔氏)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고조부는 한림직학사 김민성(敏成), 증조부는 병부상서 김효인(孝印), 조부는 좌정승 충순공(忠順公) 김현경(金玄慶), 부친은 찬성사(贊成事) 김전(金悛)이다. 모친은 판삼사좌사(判三司左使)를 지낸 왕창(王敞)의 딸이다. 부인은 이천 서씨(徐氏)로 시중랑(待中郞) 서문한(徐文漢)의 딸이다. 아들이 둘인데 맏이 최흡(洽)은 합문지후(閤門祗侯), 둘째 최필(泌)은 밀직학사(密直學士)를 지냈다.
[활동 사항]
최영규는 원 간섭기에 활동하였으나, 정확한 생몰 연대는 알려진 것이 없다. 1261년(원종 2) 문과에 급제하고 여러 관직을 거쳐 보문각 대경(寶文閣 大卿)을 역임하였다. 서경(西京)을 유수하였는데, 유교를 가르쳐 교화시키는데 뛰어나 유화(儒化)가 성하게 일어났다. 당시에 수주(水州) 일대의 풍속이 퇴폐하고 사람들이 인륜을 지키지 않아 왕이 개탄하자, 최영규가 자청하여 호장(戶長)으로 부임하여 짧은 기간에 기강과 풍속을 바로잡아 백성을 교화시켰다고 한다. 충렬왕이 이것을 가상하게 여겨 1302년(충렬왕 28) 김영규를 수성백(隋城伯)에 봉하고 최씨(崔氏) 성을 하사하였으며, 품계는 숭록(崇祿), 벼슬은 전서(典書)로 올렸다. 이후 호남 안무사(湖南按撫使)로 나갔다가 임지에서 사망하였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화성시 매송면 숙곡리에 있는 수성최씨 시조묘이다. 수주 백성들이 그의 덕을 사모하여 재물을 모아 묘지를 마련하고 장례를 지냈으며, 매년 절일이 되면 향리가 백성들을 인솔하여 제사를 올렸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상훈과 추모]
사후 문혜(文惠)라는 시호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