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05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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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丹陽 禹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한상우 |
본관 | 단양 - 충청북도 단양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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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지 | 단양 우씨 입향지 - 경기도 화성시 매송면 어천리 |
세거|집성지 | 단양 우씨 집성지 - 경기도 화성시 매송면 어천리 |정남면 내리|장안면 독정리 |
성씨 시조 | 우현 |
입향 시조 | 우수 |
[정의]
우현을 시조로 하고 우수를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화성시의 세거 성씨.
[연원]
단양 우씨의 시조는 우현(禹玄)이다. 우현은 고려 현종 때 과거에 급제하고 정조호장(正朝戶長)을 지냈다고 한다. 단양 우씨는 우현 이후 6세손 우천석(禹天錫)이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오르고, 10세손 우현보(禹玄寶)가 공양왕의 부마가 되는 등 고려 시대의 유력한 성씨 중 하나로 성장하였다.
화성 지역 단양 우씨 중 유명한 인물로는 우성전(禹性傳)[1542~1593]과 우하영(禹夏永)[1741~1812]이 있다. 우성전은 1568년(선조 1)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고, 성균관 대사성을 지냈다. 임진왜란 발발 후에는 화성 지역을 중심으로 의병인 추의군(秋義軍)을 모집하여 김천일(金千鎰) 휘하에서 활약하였으나, 의병 활동으로 얻은 병으로 1593년(선조 26) 사망하였다. 우하영은 우성전의 7대손으로, 조선 시대 화성 지역 주요 학자 중 한 명이다. 실학자로 각종 사회 개혁 방안을 담은 『천일록(千一錄)』이라는 책을 저술하였다.
[입향 경위]
단양 우씨는 화성 지역에서 매송면 어천리를 중심으로 세거하여 왔다. 어천리의 단양 우씨들은 태종 대에 검교좌정승(檢校左政丞)을 지낸 우인열(禹仁烈)의 후손으로, 정평공파(靖平工派)에 속한다. 본래 서울과 파주 지역에 세거하였으나, 우성전의 증조부이자 연안부사를 지낸 우수(禹樹) 대에 어천리로 이주하여 세거하게 되었다.
[현황]
단양 우씨 화성 지역 집성지는 매송면 어천리 외에도, 1950년대에 정남면 내리[32세대]와 장안면 독정리[34세대]가 확인되었다. 198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는 화성 지역에 총 282세대 1,200명의 단양 우씨가 거주하는 것이 확인되었고, 2015년 조사에서는 2,377명이 확인되었다.
[관련 유적]
단양 우씨 관련 유적으로는 경기도 화성시 매송면 숙곡리 산78-1에 있는 '추연우성전묘역(우하영묘역포함)'이 있다. 2003년 4월 21일 경기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