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05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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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水原 白氏 |
영어공식명칭 | Suwon Baek Family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권기중 |
[정의]
백우경을 시조로 하는 경기도 화성시의 세거 성씨.
[연원]
수원 백씨의 시조는 백우경(白宇經), 중시조는 백창직(白昌稷)이다.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화성 지역의 내성(來姓)으로 기록되어 있다. 시조인 백우경은 신라 때 당나라에서 귀화한 인물로, 좌복야(左僕射), 대사도(大司徒) 등을 역임하였다고 한다. 중시조인 백창직은 신라 경명왕 대에 중랑장(中郎將)을 지냈다. 시호는 영희(英禧)이다. 고려 시대의 대표적인 수원 백씨 인물로는 973년(광종 24) 과거에 급제하고 한림학사(翰林學士), 예부시(禮部試) 지공거(知貢擧)를 역임한 백사유(白思柔)가 있다. 조선 시대 인물로는 중종반정 때 정국공신(靖國功臣)이 된 백수장(白壽長)이 있다.
[입향 경위]
수원 백씨가 언제부터 수원을 본관으로 하였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다만 4대조인 백휘(白揮)가 고려 목종 대에 수원군(水原君)에 봉하여졌고, 백천장(白天藏)이 충선왕 대에 수원백(水原伯)에 봉하여졌다는 점을 참고할 만하다. 또 가장 오래된 족보로 알려진 『영락보(永樂譜)』 서문에는 조선 세종 대에 수원 백씨를 칭한 사실이 나타난다고 한다. 조선 시대에는 현재의 화성시가 수원부와 남양부에 나뉘어 속하였으므로, 현재 화성시 지역에도 수원 백씨들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황]
수원 백씨의 분파는 모두 29개이다. 중시조 백창직의 아들인 백고(白古)의 후손이 28개 파로 대다수를 점하며, 나머지 하나인 문간공파(文簡公派)도 백창직의 다른 아들 백탁(白卓)의 후손이다. 시조 묘는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낙산길 233-8에 있으며, 향사(享祀)는 매년 양력 5월 첫 토요일에 지낸다.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 의하면 경기도에 모두 8만 4,635명의 수원 백씨가 거주하고 있는데, 그중 화성시에 거주하는 인구는 4,121명이다.
[관련 유적]
수원 백씨 관련 유적으로는 경기도 화성시 기안동에 있는 백천장선생묘가 있다. 1985년 9월 20일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