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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600461
한자 萬年堤
영어공식명칭 Mannyeonje
이칭/별칭 방축수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경기도 화성시 안녕동 152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서길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8년 - 한국자원연구소, 만년제 분포지에 대한 시추 및 지질 환경 조사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7년 - 기전문화재연구원 만년제 1차 시굴 조사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12년 - 경기문화재연구원 만년제 2차 시굴 및 발굴 조사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13년 - 경기문화재연구원 만년제 3차 시굴 및 발굴 조사 시작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14년 - 경기문화재연구원 만년제 3차 시굴 및 발굴 조사 종료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15년 - 경기문화재연구원 만년제 4차 시굴 및 발굴 조사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16년 - 경기문화재연구원 만년제 5차 시굴 및 발굴 조사
개축|증축 시기/일시 1798년연표보기 - 만년제 수축
문화재 지정 일시 1996년 7월 23일연표보기 - 만년제 경기도 기념물 지정
현 소재지 만년제 - 경기도 화성시 안녕동 152 지도보기
출토 유물 소장처 경기문화재연구원 -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인계로 178[인계동 1116-1]
성격 저수지
관련 인물 정조
소유자 경기도
관리자 경기도
문화재 지정 번호 경기도 기념물

[정의]

경기도 화성시 안녕동에 있는 조선 시대 저수지.

[건립 경위]

만년제는 원래 방축수(防築藪)로 불렸으나, 1795년(정조 19) 만년제로 개칭되었다. 이어 1798년(정조 22) 2월 13일부터 4월 15일까지 연인원 3만 7,920명과 6,000냥의 공사비를 투입하여 대규모 수축을 진행하였다. 당시 만년제 수축은 영우원천장에 따른 수원 신도시 건설 과정의 일환으로 진행된 것이었다. 정조화성(華城)을 축성하면서 경제적 기반 시설을 확보하고 백성들의 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해 화성 밖 사방에 제방을 축조하였는데, 화성 남쪽에 있는 만년제가 그중 하나이다. 만년제 이외에 화성 북쪽에는 만석거(萬石渠), 서쪽에는 축만제(祝萬堤)를 축조하였다. 또한 만년제는 수리적 기능 외에 현륭원[사도세자의 무덤인 영우원을 천장하며 새로 붙인 이름. 이후 융릉으로 격상됨]과 관련한 풍수적 역할도 하였던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위치]

만년제는 '화성 융릉과 건릉' 입구에서 지방도84호선을 따라 남동쪽으로 약 1.2㎞ 이동하면 나온다.

[형태]

만년제의 평면 형태는 북쪽 제방이 가장 짧고 동쪽 제방이 가장 긴 사다리꼴 모양을 하고 있으며, 남쪽과 북쪽 제방은 직선이고 동쪽과 서쪽 제방은 약간 볼록한 형태이다. 주요 내부 시설물은 괴성(塊星), 수문[상수문·하수문], 은구(隱溝)[지하 수로]가 있다. 원뿔 모양으로 쌓아 올린 괴성은 현륭원의 풍수와 관련된 상징적 의미와 물의 순환을 통한 수질 정화 기능을 담당한 것으로, 만년제의 중심부에 자리한다. 하수문은 동쪽 제방과 남쪽 제방이 만나는 모서리 부분에 있으며, 은구는 서쪽 제방 종단면을 가로지르는 구 속에 깬돌을 채워 넣은 형태로 확인되었다. 아직 상수문은 발굴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한 상태이다.

한편, 『일성록』에 기록된 제방의 규모는 동쪽 제방이 길이 185보[약 229m] 너비 15보[약 19m], 서쪽 제방이 길이 145보[약 180m] 너비 30보[약 37m], 남쪽 제방이 길이 151보[약 188m] 너비 13보[약 16m], 북쪽 제방이 길이 102보[약 127m] 너비 10보[약 12m]이다. 전체 둘레는 583보[약 724m], 높이는 8척에서 9척 사이로 기록되어 있다.

다음으로, 만년제 가운데에 있는 괴성의 둘레는 보척 81보[약 101m]로 기록되어 있으나, 발굴 조사 결과 114.5m로 나타나 약간 차이가 있다. 다만 목척 10척[약 3m]으로 기록된 괴성의 높이는 발굴 결과 3.06m로 확인되어 거의 비슷하다. 하수문의 기록상 규모는 길이 21보[약 26m], 너비 1척 6촌[약 49㎝], 높이 1척 1촌[약 33㎝]이다. 발굴 결과 드러난 규모는 길이 26.02m, 너비 45~49㎝, 높이 30~33㎝로, 기록과 거의 비슷하다. 은구의 길이는 37.5m, 너비는 2.2m, 깊이는 0.94m 내외이다. 『화성지』에 의하면 만년제의 수심은 5척[약 1.5m]이었다.

[현황]

만년제가 자리한 토지는 과거 구 황실 재산이었으나, 국유화되어 문화재관리국에서 관리하였다. 1964년 문화재관리국은 개정 구황실재산법에 의거, 을종재산으로 구분된 만년제 토지를 용주토지개양계에 매각하였다. 1990년 용주토지개양계는 만년제 토지를 다시 개인에게 매각하였고, 수리계 사이의 분쟁을 겪다가 1996년 7월 23일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2005년에 토지 소유주에 의해 만년제가 무단으로 매립되는 사태가 발생하는 등 개인 사유지와 지정 문화재 사이의 갈등이 계속되었다.

이에 2009년부터 2011년까지 경기도와 화성시에서 만년제 토지를 매입하였고, 아울러 만년제의 복원·정비를 위해 발굴 조사와 학술 대회를 진행하였다. 발굴 조사는 2007년부터 2016년까지 총 6차례 진행되었으며, 2021년 현재도 화성시를 중심으로 만년제 복원 및 정비 사업이 계속 추진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만년제정조의 권농 정책을 엿볼 수 있는 수리 시설일 뿐만 아니라, 현륭원의 풍수적 완성과 능행로의 역할도 겸한 복합적 가치를 지닌다. 특히 조선 시대 수리 시설의 백미로 평가받는 수갑을 설치한 제언 중 한 곳이며, 괴성의 설치 등 구조상의 특이점은 조선 후기 농업 수리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6차에 걸친 발굴 조사를 통해 조선 시대 사료에 나타난 만년제를 실증적으로 증명하였다는 점에서 고고학적 가치도 매우 높다.

앞으로 만년제 정비 복원 사업이 완료되면, '화성 융릉과 건릉' 일대는 조선 왕릉의 경관적 외양을 회복하게 된다. 또한 만년제는 유네스코 등재를 추진 중인 정조대왕능행차와도 연계할 수 있기에, 화성 지역의 대표적 역사 및 관광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3.11.01 오탈자수정 [기본정보] 한자항목명 滿年堤 → 萬年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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