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04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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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雙井里- |
영어공식명칭 | Ssangjeong-ri Menhir |
이칭/별칭 | 미륵바위,망부석,돌미륵,쌍정리 입석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민간 신앙 유적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쌍정리 557-1 |
시대 | 선사/청동기 |
집필자 | 서길덕 |
현 소재지 | 쌍정리 선돌 -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쌍정리 55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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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선돌 |
크기(높이,둘레) | 152㎝[높이]|60㎝[폭]|30㎝[두께]|170㎝[최대 둘레] |
[정의]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에 있는 청동기 시대 선돌.
[개설]
쌍정리 선돌은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쌍정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선돌이다. 선돌과 관련하여 몇 가지 전설이 전해진다. 먼저, 옛날 아들을 못 낳은 아낙네가 미륵당을 짓고 현재 돌미륵이 있는 곳에 기도하여 아들을 낳았다는 전설이 있다. 또 다른 전설은 다음과 같다. 힘이 장사인 두 형제가 있었는데, 집을 나간 형이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자 형이 죽은 것으로 생각한 동생이 큰 돌을 뽑아서 병풍 뒤에 세워 두고 제를 지냈다. 동생이 세워 둔 돌을 초록동이라는 사람이 주무르자 사람의 얼굴이 새겨졌다고 한다. 사람 얼굴이 새겨진 돌을 동생이 지금의 장소로 다시 옮겼다고 한다.
[위치]
쌍정리 선돌은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쌍정리 233번지 밭에서 서쪽 250m 지점에 있다.
[형태]
쌍정리 선돌은 앞면에 얼굴상이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 얼굴은 큰 눈이 불툭하고 코가 넓으며 인중과 입술 사이를 깊게 새긴 모습이다. 전체적으로 장방형의 기둥 모양을 하고 있다. 땅에서 얼굴상까지는 약 60㎝ 폭으로 일정하다가 위로 갈수록 점차 좁아지는 형태이다. 특히 윗부분은 일부러 다듬은 흔적이 관찰된다. 2021년 현재 앞쪽으로 15° 정도 기울어져 있다. 기울어진 상태의 높이는 150㎝ 정도이며, 바로 세웠을 때의 높이는 160㎝ 정도로 추정된다. 재질은 화강암이다.
[의례]
쌍정리 선돌과 관련하여 2021년 현재 마을에서 공동으로 제사를 지내거나 하는 것은 없다. 별도의 개인적인 치성도 거의 없다고 한다.
[현황]
쌍정리 선돌과 관련하여, 돌미륵 얼굴이 향하는 쪽 마을의 여자들이 바람이 난다는 풍문이 주변 마을에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의 젊은 남자들이 서로 자기 마을을 바라보지 않도록 선돌의 방향을 약간씩 틀어 놓기도 하였다고 한다. 2006년 발간된 『화성의 민속』[화성시, 2006]에서는 선돌의 얼굴 방향이 정북향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2021년 현재는 동쪽을 바라보고 있다. 또, 2007년에 발간된 『경기도 고인돌』[경기도박물관, 2007]에 의하면 선돌이 바로 서 있었으나, 2021년 현재는 앞쪽으로 약간 기울어진 상태이다. 2021년 현재 논둑 위의 수풀에 가려져 있어 쉽게 찾을 수 없다. 선돌의 뒷면과 옆면에 이끼 등 지의류에 의한 오염이 심하고 주변이 정비되어 있지 않은 점으로 볼 때, 마을에서 따로 관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쌍정리 선돌은 넓은 논 경작지 가운데에 자리한 수직리 선돌과 입지가 비슷하다. 입지로 보았을 때 마을의 풍요를 기원하는 대상으로 숭배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선돌에 사람의 얼굴을 언제 새겼는지는 알 수 없으나, 선사 시대 선돌 중에서는 매우 드문 사례에 속한다. 선돌의 얼굴상과 관련한 여러 가지 재미있는 전설들이 쌍정리, 천등리 등 주변 마을에 전해져 오고 있어 역사적 민속적 가치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