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04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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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申用漑 神道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구문천2길 122-10[구문천리 산104-1]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권기중 |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 1463년 - 신용개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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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 1519년 - 신용개 사망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0년 2월 20일 - 신용개 신도비 화성시 유형문화재 지정 |
현 소재지 | 신용개 신도비 -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구문천2길 122-10[구문천리 산104-1] |
성격 | 신도비 |
관련 인물 | 신용개 |
재질 | 석회암 |
관리자 | 신희진 |
문화재 지정 번호 | 화성시 유형문화재 |
[정의]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신용개의 신도비.
[개설]
신용개 신도비는 조선 중종 때 좌의정을 역임한 신용개(申用漑)[1463~1519]의 신도비이다. 신용개의 본관은 고령이며, 할아버지는 신숙주(申叔舟), 아버지는 신면(申㴐), 어머니는 정호(丁湖)의 딸이다. 시호는 문경(文景)이다. 신용개는 1488년(성종 19) 별시 문과에 급제한 후 승문원 정자에 등용되며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 뒤 지평, 이조 정랑, 도승지 등을 거쳐 예조 참판에 올랐으나,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유배당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1506년(중종 1) 중종반정 후 다시 형조 참판에 임명되었고, 이어 홍문관과 예문관의 대제학을 지냈다. 그 뒤 대사헌을 거쳐 이조, 병조, 예조의 판서를 역임하였으며, 1516년(중종 11)에는 우의정에 올랐다. 이어 1518년(중종 13) 좌의정에 올랐는데, 문무를 겸비하여 당시 선비들의 중심이 되었다.
[위치]
신용개 신도비는 요당교차로에서 구문천2리 마을 회관 방향으로 이동하다 보면 나오는 고령 신씨 북백공파 묘역 내에 있다.
[형태]
신용개 신도비는 비신과 이수, 방부로 구성되어 있다. 비신과 이수는 하나의 돌로 제작하였으며, 재질은 석회암이다. 이수에는 앞면에 2마리, 뒷면에 1마리의 용이 조각되었다. 방부의 윗면에는 복련(覆蓮)을 새겼다.
[금석문]
신용개 신도비는 이행(李荇)[1478~1534]이 글을 지었고, 김희수(金希壽)[1475~1527]가 글씨를 썼다.
[의의와 평가]
신용개 신도비는 조선 전기의 신도비 양식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며, 화성 지역 고령 신씨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도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