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04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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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華城南陽里愼嬪金氏墓域 |
영어공식명칭 | Tomb of Sinbin Kim clan in Namyang-ri, Hwaseo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남양리 산131-17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성남 |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 1406년 - 신빈 김씨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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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 1464년 - 신빈 김씨 사망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4년 12월 24일 - 화성남양리신빈김씨묘역 경기도 기념물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01년 - 화성남양리신빈김씨묘역 보수 공사 |
현 소재지 | 화성남양리신빈김씨묘역 -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남양리 산131-17 |
성격 | 무덤 |
관련 인물 | 신빈 김씨 |
봉분 크기/묘역 면적 | 2.2m[봉분 높이]|24m[봉분 둘레]|1.5m[곡장 높이]|50m[곡장 길이]|2m[장명등 높이]|2.5m[무인석 높이]|1m[상석 가로]|1.8m[상석 세로] |
소유자 | 전주 이씨 육군파 대종회 |
관리자 | 전주 이씨 육군파 대종회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기도 기념물 |
[정의]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에 있는 조선 세종의 후궁 신빈 김씨의 묘역.
[개설]
화성남양리신빈김씨묘역은 조선 세종의 후궁 신빈 김씨(愼嬪 金氏)[1406~1464]의 묘역이다. 신빈 김씨의 본관은 청풍(淸風)이며, 1418년(세종 즉위년)에 궁에 들어왔다. 후궁으로 계양군(桂陽君) 등 6명의 왕자와 2명의 옹주를 낳았다. 5번째 아들 영해군을 낳은 뒤 소의(昭儀)에 올랐고, 1439년(세종 21) 귀인(貴人)에 올랐다. 1447년(세종 29)에는 정1품인 빈(嬪)에 책봉되었다. 세종 사후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되었다. 단종이 다시 환속하도록 하였으나 듣지 않았다고 한다.
[위치]
화성남양리신빈김씨묘역은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남양리 산131-17에 있다.
[형태]
화성남양리신빈김씨묘역은 비교적 넓은 편이며, 크게 3계(階)로 구분되어 있다. 상계에는 봉분과 혼유석, 상석, 향로석을 배치하였다. 봉분 주변으로 곡장(曲墻)이 둘려 있다. 상계의 계체석의 양 끝은 직각으로 꺾여 들어가도록 한 특이한 배치를 보인다. 중계에는 문인석 2기와 장명등을 배치하였는데, 장명등은 2001년에 새로 조성한 것이다. 하계에는 석물을 배치하지 않았다.
[금석문]
화성남양리신빈김씨묘역 동쪽 비각 안에 1465년(세조 11) 건립한 신도비가 있다. 형태는 연잎 형태의 비석 머리와 네모난 비석 받침을 갖춘 하엽수방부형(荷葉首方趺形)이다. 김수온(金守溫)[1410~1481]이 글을 짓고, 안혜(安惠)가 글씨와 전액을 썼다. 전서로 '신빈김씨묘비(愼嬪金氏墓碑)'라고 새겨져 있다.
[현황]
화성남양리신빈김씨묘역은 전체적으로 원형을 유지하고 있으나, 일부 현대에 추가한 조형물이 있다. 1994년 12월 24일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화성남양리신빈김씨묘역은 조선 초기의 묘제를 잘 보여주고 있다. 신도비 또한 15세기의 대표적인 형태를 하고 있어 당시 석물 연구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