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04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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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怡將軍墓 |
영어공식명칭 | Tomb of General Nam I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남전리 산145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성남 |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 1441년 - 남이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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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 1468년 - 남이 사망 |
문화재 지정 일시 | 1973년 7월 10일 - 남이장군묘 경기도 기념물 제13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남이장군묘 경기도 기념물로 재지정 |
현 소재지 | 남이장군묘 -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남전리 산145 |
성격 | 무덤 |
관련 인물 | 남이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기도 기념물 |
[정의]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에 있는 조선 전기 무신 남이의 묘.
[개설]
남이장군묘는 조선 전기의 무신인 남이(南怡)[1441~1468]의 무덤이다. 남이의 본관은 의령(宜寧)이고, 시호는 충무(忠武)이다. 할아버지는 의산군 남휘(南暉)[?~1454], 할머니는 태종과 원경왕후의 넷째 딸인 정선공주(貞善公主)이며, 아버지는 군수 남빈(南份)이다. 세조 대 공신으로 좌의정에 오른 권람(權擥)[1416~1465]의 딸과 결혼하였으나, 부인 권씨는 요절하였다. 재혼한 부인과 첩 2명이 더 있었는데, 재취 부인은 후일 남이가 처형될 때 함께 처형되었고, 첩들은 노비가 되었다.
남이는 1457년(세조 3) 16세로 무과에 장원 급제하여 세조의 총애를 받았다. 1467년(세조 13) 함경도 일대에서 이시애의 난이 일어났을 때 토벌대 대장이 되어 선봉으로 출정하였다. 이시애의 난이 평정된 뒤 적개공신(敵愾功臣) 1등에 책록되고 의산군에 봉군되었다. 이어 1468년(세조 14) 병조 판서에 올랐다. 그러나 예종이 즉위한 후 한명회(韓明澮)[1415~1487], 신숙주(申叔舟)[1417~1475]의 노골적인 견제를 받기 시작하였으며, 유자광(柳子光)[1439~1512]의 모함을 받고 처형되었다. 1818년(순조 18) 관작이 복구되었다.
[위치]
남이장군묘는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남전리 산145번지에 있다. 강원도 춘천 남이섬에 있는 남이장군묘는 가묘이다.
[형태]
남이장군묘는 석재로 쌓은 2단 축대 위에 자리하고 있다. 부인과 함께 매장한 쌍분이며, 모두 호석(護石)을 사용하였다. 봉분 뒤편으로는 사성(莎城)이 둘려 있다. 석물은 묘표와 둘레석, 혼유석, 상석, 향로석, 망주석, 문인석 등이 배치되어 있다. 석물은 묘역 하단에 있는 문인석 1쌍을 제외하면 대부분 현대에 건립한 것이다. 문인석은 조선 초기의 전형적인 형태를 보이는데, 복두공복형(幞頭公服形)[머리에는 복두를 쓰고, 공복을 입은 문신의 형태]이며, 두 손은 소매로 가려 홀을 쥐고 있다. 깊은 선각의 눈 표현과 굴곡진 수염이 강인한 인상을 주며, 각진 어깨와 평면적인 옷 주름 표현은 15세기에 유행한 양식이다.
[금석문]
남이장군묘의 묘표 앞면에는 '병조판서충무공남이장군지묘(兵曹判書忠武公南怡將軍之墓)'라고 쓰여 있고, 뒷면과 측면에는 남이의 출생부터 모함을 받아 처형당할 때까지의 행적이 적혀 있다.
[현황]
남이장군묘는 후대의 정비 과정에서 묘제의 원형이 일부 변형되었으며, 석물 또한 묘역 조성 당시의 것과 새로 추가된 것이 섞여 있다. 묘표는 1971년에 새로 건립한 것이고, 둘레석, 혼유석, 상석, 향로석, 망주석은 1981년에 추가로 조성한 것이다. 1973년 7월 10일 경기도 기념물 제13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며 경기도 기념물이 되었다.
[의의와 평가]
남이장군묘는 원형이 일부 변형되기는 하였지만, 묘역 하단의 문인석이 조선 초기의 예술성을 그대로 담고 있어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