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04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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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華城 花梁鎭城 |
영어공식명칭 | Hwaryangjinseong Fortress |
이칭/별칭 | 남경성,남경두토성,남경도목쟁아,화량성,지화리산성,와룡산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지화리 산90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손설빈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6년 5월 30일 - 화성 화량진성 경기도 기념물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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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화성 화량진성 -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지화리 산90 |
성격 | 평산성 |
양식 | 포곡식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기도 기념물 |
[정의]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에 있는 조선 시대 평산성.
[개설]
화성 화량진성은 조선 전기에 경기도 지역 수군을 총괄하는 경기수영이 설치되었던 곳이다. 수군절도사 혹은 수군첨절제사가 파견되었으며, 영종포(永宗浦)·초지량(草芝梁)·제물량(濟物梁)을 관할하였다.
[위치]
화성 화량진성은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지화리 산90번지 일대에 있다.
[형태]
화성 화량진성은 석축의 포곡식 평산성으로, 평면은 남북이 길쭉한 타원형이다. 2013년 한신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지표 조사에 의하면 잔존 성벽의 길이는 약 776m이고, 훼손된 추정 동벽 및 동남 구역을 포함하면 1,176m이다. 성벽은 협축과 편축을 혼용하여 축조하였고, 성 밖으로는 외황(外隍)[성벽 바깥에 조성한 물 없는 도랑]을 조성한 후 2~6단의 유단 시설을 지형 조건에 맞추어 설치하였다고 보고하였다. 북벽과 서벽 일부에서만 석축이 확인되며, 동벽은 석축이 많이 붕괴된 상태이다. 남벽은 마을 진입로와 경작지 조성으로 인해 대부분 파괴되었지만, 도로 단면에서 뒤채움석이 확인되어 석축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2013~2014년에 한신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서문 터 시굴 조사에서 문 터 내측에 시설된 'ㅁ'자형 내옹성이 확인되었는데, 충청북도 청주시의 상당산성 남문과 동북암문, 부산광역시 기장산성 남문 터 등에서도 나타나는 형식이다. 17세기를 전후한 시점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며, 6·25전쟁 때 폐쇄되었다.
2018년 한울문화재연구원 발굴 조사 결과, 서측과 서남측 성벽 축조 방식이 편축으로 확인되었다. 서측 성벽은 허튼층쌓기와 바른층쌓기가 보여 최소 1~2차례 이상 수·개축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서남측 곡성부는 선대 성벽의 치성이거나 왜성에서 보이는 횡시(橫矢)일 가능성이 있다. 지표 조사에서 외황과 토루의 흔적으로 보고된 곳은 발굴 결과 해자로 밝혀졌으며, 양안에는 호안석축을 쌓았다.
2020년에도 한울문화재연구원에서 북측 성벽과 해자를 발굴하였다. 북측 성벽은 서측과 마찬가지로 편축으로 확인되었다. 면석은 최대 5단이며, 105㎝ 정도 잔존한다. 북측 해자도 양안에 호안석축이 확인되어 모든 성벽 바깥에 같은 양식의 해자가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북측 성벽 내측에서 건물터가 확인되었는데, 장대로 추정된다.
[현황]
화성 화량진성은 2016년 5월 30일에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화성 화량진성은 지표 조사에서 채집된 도기, 자기, 기와 등으로 보아 조선 시대에 운영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고려사』에서 화지량이란 지명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고려 시대부터 관방 관련 시설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8세기경의 인화문 토기 편도 채집되어 통일 신라까지 올라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