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04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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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城郭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
시대 | 고대/삼국 시대,고대/남북국 시대,고려/고려 전기,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강병학 |
[정의]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삼국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흙이나 돌로 쌓은 방어 시설.
[개설]
성곽(城郭)이란 말은 내성(內城)과 외곽(外郭)의 합성어인데, 여기서 곽(郭)은 내성 주위에 설치된 외성(外城), 나성(羅城), 나곽(羅郭) 등을 가리킨다. 성곽은 축조 위치, 목적과 기능, 축조 재료에 따라 분류가 가능하다.
먼저, 축조 위치를 기준으로 하면 산성·평지성·평산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산성은 다시 산을 둘러싼 형태에 따라 테뫼식, 포곡식, 복합식으로 나뉜다. 테뫼식은 산의 봉우리를 중심으로 7~8부 능선을 따라 성벽을 쌓은 것을 말하며, 규모가 작고 연대가 오래된 것이 많다. 포곡식은 계곡을 감싸고 축성한 것으로, 규모가 크고 수원(水源) 확보가 용이하여 장기 농성에 유리하다. 복합식은 테뫼식과 포곡식의 결합 형태로 규모가 매우 크다. 평지성은 평지에 축성한 성곽으로 산성에 비해 수가 극히 적다. 방어에 취약한 단점이 있으나 공간의 활용과 수원 확보 등에서 유리하며, 방어력을 높이기 위해 성벽 외부에 해자(垓字)를 설치하는 경우도 있다. 평산성은 구릉지와 평탄지 일부를 포함하는 지형에 축성한 것으로 주로 읍성에서 많이 보인다.
다음으로 성곽을 축조한 목적과 기능에 따라 분류하면, 왕궁과 종묘사직을 지키기 위한 도성(都城), 지방의 행정·경제·군사의 중심지인 읍성(邑城), 유사시를 대비하여 방어용·도피용으로 축조한 산성(山城), 창고를 보호하기 위한 창성(倉城), 군사적 요충지에 쌓고 군인이 주둔하던 진보(鎭堡), 왕이 행차할 때 일시적으로 머물기 위한 행재성(行在城), 국경과 요새지에 쌓은 행성(行城)[장성(長城)]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또 성벽의 축조 재료에 따라서는 목책성(木柵城), 토성(土城), 석성(石城), 토석혼축성(土石混築城), 전축성(塼築城) 등으로 구분된다. 목책성은 나무를 땅에 박아 가로·세로로 엮어 만든 것이다. 토성은 목책성과 함께 오래된 형식 중 하나이다. 토성의 축조 방법으로는 주변을 깎아 내고 안팎에 도랑을 만들어 급경사의 성벽을 조성하는 삭토법(削土法), 일정한 두께로 흙을 펴서 다지는 판축법(版築法), 주변의 흙을 일정 높이까지 쌓아 올린 후 다져 성벽의 형태를 조성하는 성토법(盛土法) 등이 있다. 석성은 돌을 쌓아 성벽을 만드는 방식으로 삼국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지속되었는데, 처음에는 토성으로 축성하였다가 개축(改築)하면서 석성으로 변화되는 사례가 많다. 석성의 축조 방식에는 외벽과 내벽을 모두 돌로 쌓는 협축법(夾築法)과 외벽만을 돌로 쌓는 편축법(片築法)이 있다. 편축법은 산의 경사에 의지하여 축성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내탁(內托)이라고 한다. 토석혼축성은 흙과 돌을 섞어 쌓은 성을 말한다. 전축성은 벽돌을 주재료로 하여 쌓은 성이다.
성곽은 기본적으로 성문과 성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토축성의 성문은 가운데가 뚫려 있는 형태가 대부분이며, 석축의 경우에는 개거식(開据式)[성문 입구 상부가 개방된 형태], 평거식(平据式)[성문 양쪽에 측벽을 쌓고 측벽 위에 장대석 등을 얹은 형태], 홍예식(虹霓式)[성문의 천정을 무지개 모양으로 만든 형태], 현문식(懸門式)[성벽의 일정 높이에 사다리를 놓고 다니는 형태] 등이 있다. 한편, 성문 방어를 위해 ‘U’자형의 옹성(甕城)을 두르거나, 성문 양쪽으로 돌출시켜 적대(敵臺)를 배치하기도 한다. 또 적으로부터 몸을 숨기기 위해 낮게 쌓은 담장인 성가퀴나 성벽의 일부 구간을 돌출시킨 치(雉)를 조성하기도 한다.
[화성 지역의 성곽]
화성 지역에서 보고 및 조사된 성곽은 총 20개소에 이른다.
삼국 시대에 축조된 성곽은 당성, 길성리 토성, 소근산성, 오두산성, 운평리성, 태봉산성, 한각리성 등이 있다. 백제 유물이 출토된 성곽은 6개소 정도이며, 약 20~100m 내외의 구릉 말단부나 독립 구릉상에 자리한다. 규모는 다양한데, 길성리 토성의 경우 둘레가 2,311m에 달한다. 길성리 토성 주변 고분에서 금동관과 금동 신발 등이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다른 성에 비해 중요도가 높았음이 분명하다. 신라와 관련된 성곽으로는 당성이 있는데, 당항성(黨項城)으로 비정되는 중요한 유적이다. 신라가 한강 유역을 장악한 이후 대당 교역의 핵심적인 창구 역할을 수행하였던 곳으로 보인다. 백곡리 토성은 통일 신라시대 때 축조되어 당성이 가지고 있던 역할을 분담하였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고려와 조선 시대의 성곽은 수원고읍성, 화량진성, 남양리 토성, 사창리성, 삼존리성, 영종포성, 청명산성, 재양현성 등이 있다. 대부분 고려 말~조선 초에 왜구 침입에 대응하기 위해 축조된 성이다. 규모는 둘레 1㎞ 내외로 비교적 크며, 해발 고도가 높지 않은 곳에 읍성 형태로 축조되었다.
[의의와 평가]
화성 지역은 삼국 시대 이래중국과의 교류를 위한 관문 역할을 하였을 뿐 아니라, 교통상·국방상으로도 요충지였다. 따라서 이른 시기부터 많은 성곽이 축조되었고,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