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03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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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鎭官制 |
이칭/별칭 | 진관체제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권기중 |
[정의]
조선 시대 경기도 화성 지역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시행된 지방 방위 체제.
[제정 경위 및 목적]
조선 초기의 방위 체제는 북방 국경 지대와 남방 연해 지대를 방어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북방 지역에는 군익도(軍翼道) 체제가 시행되고 있었고, 남방 지역에는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여 연해의 요충지에 진을 설치하였다. 반면 내륙 지역에는 이렇다 할 군사 조직이 없는 상황이었다. 경기도의 경우 단 한 곳의 진도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따라서 외침을 받아 연해 지대의 진이 무너질 경우, 내륙 지역은 마땅한 대응 수단이 없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취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세조 대부터 전국적인 규모의 방위 체제 구축이 시도되었다.
[관련 기록]
진관제의 성립과 변천에 관한 주요 내용은 조선 시대 법전인 『경국대전』, 『속대전』, 『대전통편』 등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이외에 『정조실록』과 『일성록』 등에도 관련 기록이 등장한다.
[변천]
조선은 1455년(세조 1), 북방 지역에서만 실시하던 군익도 체제를 전 지역으로 확대 시행하였다. 군익도 체제는 전국의 중요 거점 지역에 거진(巨鎭)을 설치하고, 주변 지역을 거진에 나누어 배속시키는 형태의 군사 제도이다. 전국의 각 도는 수 개의 군익도로 나뉘었고, 각 군익도는 다시 중·좌·우의 3익(翼)으로 구성되었다. 군익도 체제하에서 각 익의 지휘관은 지방 수령이 겸임하였고, 수령은 익에 포함되는 중앙군과 지방군을 모두 관할하였다. 오늘날 화성시에 해당하는 남양부는 군익도 중 부평도에 속하였고, 부평도 내에서는 수원부를 중심으로 형성된 좌익에 편제되었다.
세조 초기에 실시한 군익도 체제는 1457년(세조3) 10월 진관 체제로 변모하였다. 그에 따라 군익도 체제에서의 ‘도(道)’는 ‘진(鎭)’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또 좌-중-우익 체제를 폐지하는 대신, 주진(主鎭)의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거진(巨鎭)의 첨절제사(僉節制使)-제진(諸鎭)의 동첨절제사(同僉節制使)로 이루어진 단일한 지휘 계통을 확립하였다. 경기도에서는 진관 체제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수원부를 중심으로 ‘수원진’이 신설되었고, 남양부가 속하였던 ‘부평도’는 해체되어 수원진의 속진이 되었다. 『경국대전』에도 수원진관의 편제와 관련하여, 수원부사가 첨절제사를 맡고, 남양부사는 첨절제사 아래의 직책인 동첨절제사를 맡는 것으로 명시되어 있다.
수원진관 군병의 수는 1470년(성종 1) 당시 경기도에서 가장 많은 2,713명이었다. 수원진관 내에서 가장 많은 군병을 보유한 곳은 1,249명을 보유한 수원부였으며, 남양부에는 198명의 군병이 있었다. 198명은 수원 진관 내 13개 지역 중에서 4위에 해당하는 수치인데, 2위 양성현[지금의 경기도 안성시 서부 지역]이 218명, 3위 부평부가 207명이어서 2·3위 지역과 큰 차이가 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당시 남양부의 군사적 위상과 중요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조선 전기의 진관제는 조선 후기에 들어 영장제로 재편되기 시작한다. 영장제는 지방의 주요 거점을 몇 개의 영으로 나누어 방어한다는 점에서 진관제와 유사한 면이 있었다. 하지만 지방관이 군사 지휘관을 겸임하던 진관제와 달리, 영장제에서는 일부 지역에 전임 영장이 별도로 파견되었다. 1746년(영조 22) 편찬된 『속대전』에 의하면, 경기도의 경우 6원(員)의 영장이 배치되었는데, 지방관이 겸임하였다. 전영은 광주부윤, 좌영은 남양부사, 중영은 양주목사, 우영은 장단부사, 후영은 죽산부사가 겸임하였다. 그리고 5영과 별도로 별중영(別中營)을 두었는데, 수원부사가 겸임하였다.
한편, 1793년(정조 17) 수원부가 화성유수부로 승격하고 장용영(壯勇營) 외영이 창설되면서 수원진이 좌영장이던 남양부로 이설되었고, 수원진관 소속의 속진도 모두 남양부에 이속되었다. 이렇게 해서 남양진관이 형성되었으며, 남양진관은 19세기까지 유지되었다.
[의의와 평가]
진관제는 조선 전기에 전국을 통일된 군사 조직으로 편제하기 위해 수립한 군사 제도이다. 경기도에도 수도 한양을 방어하기 위해 진관제에 근거한 방위 체제가 확립되었다. 지금의 화성 지역에 해당하는 수원부와 남양부는 경기도 서남부 지역의 요충지로서 경기도 지역 방위 체제에서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