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02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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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馬山浦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시설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고포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고병옥 |
[정의]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고포리에 있었던 포구.
[개설]
마산포(馬山浦)라는 명칭은 여러 가지 설이 있다. 1985년 출간된 『한국지명총람』에는 '말이 바다를 건너왔다'라고 하여, '마포'라 서술되어 있다. 화성 지역에서 전래된 이야기는 '조선 중엽에 말이 바다를 건너와 마포로 부르다가, 이후에 이곳 산세가 말의 형상을 닮아 마산포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화성시사』의 지명유래편에서 마산포는 으뜸을 뜻하는 말[宗, 首]이라 전한다. 1882년 7월 임오군란이 일어났을때, 청나라 제독 오장경(吳長慶)[1829~1884]이 군함 3척과 상선 2척에 3,000여 명의 병력을 싣고 한반도에 상륙한 곳이기도 하다.
[변천]
마산포는 바로 앞에 있는 어도(魚島)라는 작은 섬이 있어 큰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파도를 막는데 유리하였고, 다른 곳보다 수심이 깊고 조수간만의 차가 적어 유리한 자연 환경을 갖고 있었다. 신라 시대에는중국과의 교역로로 활용되었고, 개항기에는 청나라 배들이 드나들던 포구이었다. 마산포는 인천의 제물포가 개항하기 이전, 가장 번창한 포구이었다. 제물포 보다 서울과 거리가 멀고, 다른 교통 수단과의 연결이 어려워면서 쇠퇴하였으나, 1960~70년대까지도 대부도·탄도·불도·어도·형도·우음도·선감도·제부도 등 주변 지역 섬들을 연결하는 뱃길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하였다. 한때 마산포는 소래포구·사리포구와 함께 경기만의 3대 포구 중 하나로 번성한 곳이었다. 현재는 시화호 간척사업으로 인하여 마산포 앞 바다가 매립되었고, 포구 기능은 상실하였다.
[현황]
1987년 시화호 간척사업으로 인하여 육지가 된 마산포의 주민들은 어업이 불가능하여지자,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포도를 심었다. 현재는 송산포도의 주산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