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01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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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掛囊里 |
영어공식명칭 | Gwaerang-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정남면 괘랑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효은 |
[정의]
경기도 화성시 정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괘랑리(掛囊里)는 정남면 북부에 위치한다. 동쪽으로 오산시, 남쪽으로 용수리와 발산리, 서쪽으로 관항리와 보통리, 북쪽으로 화산동에 접한다. 행정리는 괘랑1리·괘랑2리·괘랑3리·괘랑4리·괘랑5리로 구성되어 있다. 자연마을로는 너머말, 남산밑, 노산이, 안가리내 등이 있다.
[명칭 유래]
괘랑리(掛囊里)는 조선 단종 때 문신 백촌(白村) 김문기(金文起)의 5대손인 김연석(金演錫)이 낙향하였는데, 부모님을 극진히 모시고 살며 자신의 효행을 적은 글을 주머니[囊]에 넣어 걸어 놓았다[掛]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정조와 관련된 지명 유래 설도 있다. 마을에 오래되고 커다란 소나무들이 사도세자의 무덤을 지키고 있었는데, 송충이들이 솔잎을 먹어 소나무들이 죽어갔다. 이를 본 정조가 소나무를 살리기 위해 소나무 끝을 잘라내자 굶주리던 마을 사람들이 먹을 송기가 없어져, 소나무에 볶은 콩을 넣은 주머니[囊]를 매달아 놓고[掛] 콩을 먹었다는 데서 괘랑이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유사한 설로 굶주린 마을 사람들이 송기를 먹어 소나무가 죽어가자, 소나무를 살리기 위해 정조가 나무를 꺾지 못하도록 주머니[囊]에 볶은 콩을 넣어 소나무에 매달아 놓게[掛] 하여, 주머니 속의 콩을 먹고 백성들이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었다는 데서 괘랑이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자연마을 중 너머말은 큰 괴목[홰나무]이 있었던 것에서 괴목동이라고도 부른다. 남산밑은 남산 밑에 있는 마을이라서 붙은 이름이다. 노산이는 뒷산에 길이 나 있어 붙은 이름이다. 안가리내는 발산리 가리내의 안쪽에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
[형성 및 변천]
괘랑리는 조선 시대 수원부 남곡면(南谷面)에 속하였다. 『화성지』에 남곡면 소속으로 괘랑리(掛浪里)가 기록되어 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수원군 남곡면 괘랑리·갈천동(葛川洞)과 문시면(文市面) 남산동(南山洞)·신촌(新村)을 병합하여 수원군 정남면 괘랑리로 개편하였다. 이후 1949년 화성군이 신설되면서 정남면이 화성군 관할이 되었으며, 2001년 화성군이 화성시로 승격되자 화성시 정남면 괘랑리가 되어 지금에 이른다.
[자연환경]
괘랑리의 서북쪽의 보통리 경계에 봉지봉산[71.5m]이 있다. 진안동과 화산동을 지나 흘러오는 황구지천이 괘랑리의 동쪽 경계를 따라 흐른다. 황구지천 주변으로 농경지가 넓게 형성되어 있다.
[현황]
괘랑리의 면적은 2021년 1월 기준으로 약 4.29㎢이다. 인구는 2021년 5월 기준으로 총 557가구에 1,063명이 거주하고 있다. 주요 도로로 오산화성고속도로가 괘랑리의 동쪽 경계부를 따라 지나가며, 수도권제2순환고속도로는 괘랑리의 중앙부를 동서로 지난다. 또한 지방도 제315호가 괘랑리의 중앙부를 남북으로 지나가며 안녕동과 발산리로 연결한다. 관내에 정남파출소가 있다. 문화유적지로 화성시 향토문화재인 최윤식 기념비와 차운혁 충신정려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