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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600084
한자 白谷里
영어공식명칭 Baekgok-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기도 화성시 마도면 백곡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송아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4월 1일연표보기 - 경기도 남양군 마도면 백곡동에서 수원군 마도면 백곡리로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49년 8월 14일 - 수원군 마도면 백곡리에서 화성군 마도면 백곡리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2001년 3월 21일 - 화성군 마도면 백곡리에서 화성시 마도면 백곡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면적 3.48㎢[2021년 1월 기준]
가구수 170가구[2017년 12월 기준]
인구[남/여] 377명[남 226명|여 151명]

[정의]

경기도 화성시 마도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백곡리(白谷里)마도면 서부에 위치한다. 남쪽으로 고모리, 동쪽으로 금당리, 북쪽으로 해문리송산면 육일리, 서쪽으로 서신면 상안리와 접하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향기실(香氣室), 이피실, 구리개 등이 있다.

[명칭 유래]

백곡리『화성시사』에 따르면 동네 뒤쪽에 있는 청룡산(靑龍山) 줄기의 크고 작은 골짜기가 100개에서 1개 모자란 99개라서 ‘일백 백(百)’자에서 한 획을 뺀 ‘흰 백(白)’자를 써서 백곡리(白谷里)로 불렀다고 한다.

백곡리의 자연마을 중 향기실은 행기실이라고도 하는데 백곡리에서 으뜸가는 마을로 백화초목(白花草木)을 다량 식재하여 열매와 향기가 많다는 뜻으로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이피실은 이태굴, 이피굴, 입표곡(立表谷), 입표동, 입피굴으로도 불리는데, 예전에는 배가 드나들어 배를 매는 표석이 있었던 것에서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구리개는 90세 이상 장수하는 노인 아홉 명이 살고 있다고 해서 구로현(九老峴)으로 이름 붙여졌다가 부르기 쉽게 구리개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백곡리는 조선 시대 남양군 마도면(麻道面)에 속하였다. 『호구총수』에 마도면 백곡동(白谷洞)으로 기재되어 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수원군 마도면 백곡리로 개편되었다. 1949년 화성군이 신설되면서 화성군 마도면 백곡리가 되었다. 이후 2001년 화성군이 화성시로 승격되면서 화성시 마도면 백곡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백곡리는 저산성 구릉지로 둘러싸여 있으며, 남쪽에 청명산[157.1m], 서쪽으로 도꾸리덩고개·굴고개 등이 있다. 남부와 서부 산지에서 발원한 소하천이 동쪽으로 흐르면서 저평지가 발달한다.

[현황]

백곡리의 전체면적은 3.48㎢이다. 2017년 12월 기준 인구는 170가구에 377명으로 남자가 226명, 여자가 151명이다. 주요 도로로 백곡리 중앙부를 지방도 제318호가 동서로 관통하고 있으며, 송산면 육일리로 이어지는 백곡로가 있다.

백곡리의 주요 문화재로는 백곡리 고분군, 백곡리 토성(白谷里土城), 청명산성(淸明山城) 등이 있다. 백곡리 고분군백곡리 향기실 마을 뒷산에 있는 백제시대 고분군이다. 화성 마하리 고분군과 같은 형식의 석곽묘로서 부장된 토기와 철기의 형식을 통해 4세기 후반에서 5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중심고분군으로 추정된다. 백곡리 토성 역시 향기실 마을에 있는 성곽으로 제작 시기는 통일신라에서 고려 시대로 추정된다. 머리띠성, 백곡리성, 성안성이라고도 하며 인접한 백곡리 고분군과 관련된 유적이거나 북서쪽에 있는 당성의 보조성으로 추정된다. 청명산성청명산과 그 주변의 봉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테뫼식 산성으로 제작 시기는 고려에서 조선 시대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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