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200777
한자 梁榞
영어공식명칭 Yang Won
이칭/별칭 군실,순수,임천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경상남도 함양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신은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90년연표보기 - 양원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12년 - 양원, 김직재의 무옥에 연루
활동 시기/일시 1623년 - 양원, 효릉참봉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633년 - 양원, 용인현감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638년 - 양원, 예안현감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645년 2월 - 양원, 호조좌랑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645년 9월 - 양원, 의령현감에 임명
몰년 시기/일시 1650년연표보기 - 양원 사망
거주|이주지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우명리 지도보기
성격 문신
성별
본관 남원
대표 경력 호조좌랑|의령현감

[정의]

조선 시대 경상남도 함양 출신 문신.

[가계]

양원(梁榞)[1590~1650]의 자는 군실(君實), 호는 순수(順受)·임천(任天)이다. 본관은 남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첨정을 지낸 삼기당(三祈堂) 양응곤(梁應鯤), 할아버지는 참판을 지낸 구졸암(九拙菴) 양희(梁喜)[1515~1580], 아버지는 의금부도사를 지낸 서계(西溪) 양홍주(梁弘澍)[1550~1610]이다. 어머니는 연안이씨(延安李氏)로, 현감 이사민(李師閔)의 딸이다.

[활동 사항]

양원은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우명(牛鳴)에서 살았다. 양원은 13살 때까지 아버지의 명으로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1548~1631]에게 글을 배웠다. 1612년(광해군 4) 김직재(金直哉)[1554~1612]의 무옥에 연루되어 도주하자 광해군은 양원의 형제·자녀들을 잡아 가두고 좌우포도 대장에게 끝까지 체포할 것을 지시하였다. 양원의 모친 이씨가 양원이 곧 돌아올 것이라는 공초(供招)[조선 시대에 죄인이 범죄 사실을 진술하던 일. 또는 진술한 범죄 사실을 적은 글, 즉 진술서]를 올리자 광해군은 모친과 부인을 옥에 가두었다.

양원은 김직재의 무옥에 연루된 사건으로 유배되었다가 1619년(광해군 11)이 되어서야 경상남도 함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서인이 집권하자 효릉참봉에 임명되었다가 모친상을 당하여 관직에서 물러났다. 그러다가 익위사 세마에 보임되고, 의금부 도사로 자리를 옮겼다. 1633년(인조 11) 용인현감에 임명되고, 1638년(인조 16년) 예안현감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암행어사의 장계로 말미암아 예안현감에서 파직되었다. 1645년(인조 23) 2월 호조좌랑, 9월 의령현감에 임명되었다.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