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0700 |
---|---|
한자 | 金嶠敵愾功臣敎書 |
영어공식명칭 | Kimgyojeokgaegongsingyoseo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문서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공광성 |
작성 시기/일시 | 1467년 - 「김교적개공신교서」 작성 |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7년 1월 30일 - 함양:김교 적개공신 교서,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13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함양:김교 적개공신 교서,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 |
소장처 | 함양 선산김씨 양양공 김교 후손가 -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학사루길 15-14[용평리714-9] |
성격 | 교서 |
관련 인물 | 김교 |
용도 | 교서 |
발급자 | 세조 |
수급자 | 김교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
[정의]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용평리에 전해오는 조선 전기 김교의 교서.
[개설]
이시애(李施愛)[?~1467]의 난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운 김교(金嶠)[1428~1480]에게 세조가 1467년 11월에 내린 교서(敎書)이다. 김교의 자는 고경(高卿), 호는 양양(良襄)이다. 본관은 선산(善山)이다. 1450년 무과에 합격하여 훈련원 판관, 부호군(副護軍), 사복시윤 등을 지냈다. 만포절제사(滿浦節制使)로 있을 때 이시애의 난이 일어나자 강순(康純)[1390~1468]의 비장(裨將)으로 출전하여 공을 세워 적개공신 1등에 책훈(策勳)[국가나 군주 등을 위하여 공을 세운 사람의 이름과 공훈을 문서에 기록하거나 공훈을 찬양하여 상을 줌]되었다.
[제작 발급 경위]
김교가 만포절제사로 있을 때 이시애의 난이 일어나자 진북장군 강순(康純)의 비장(裨將)으로 출전하여 세운 공으로 적개공신 1등에 책훈되어 교서를 받게 되었다.
[형태]
교서는 76×28㎝ 크기의 명주에 쓰여졌다. 날인되어 있는 인장의 크기는 9.0×9.0㎝로, 적색의 정방형이다.
[구성/내용]
김교를 적개공신 1등에 책봉하는 이유를 기록하며 포상으로 땅 150결, 노비 13구 등을 하사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1등, 2등, 3등으로 나눈 적개공신 45명의 명단 등을 부기하고 있다. 교서의 첫머리와 끝부분 두 곳에 ‘시명지보(施命之寶)’[조선 초기에 임금이 내린다는 의미로 책봉이나 교서 등에 찍는 금도장]가 각각 날인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선 초기 교서의 형식, 관인 등 교령(敎令)[임금의 명령]류 문서의 변화를 연구하는데 실마리를 제공한다. 1997년 1월 30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13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