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곡정선생실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200598
한자 唐谷鄭先生實記
영어공식명칭 Danggokjeongseonsaengsilgi
이칭/별칭 『당곡실기』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상남도 함양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영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865년연표보기 - 『당곡정선생실기』 간행
소장처 경상대학교 고문헌도서관 - 경상남도 진주시 진주대로 501[가좌동 900]
성격 문집
저자 정희보
편자 정대익
간행자 정대익
권책 2권 1책
규격 27.7×18.5㎝
권수제 당곡정선생실기

[정의]

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에 거주한 당곡 정희보의 문집.

[저자]

정희보(鄭希輔)[1488~1547]의 자는 중유(仲猷), 호는 당곡이다. 본관은 진양이다. 정희보의 선조는 남해현 사람이며, 정희보부터 함양에 이사하여 살았다. 만년에는 후진 양성을 소임으로 여겨 노진(盧禛)[1518~1578], 이후백(李後白)[1520~1578], 양희(梁喜)[1515~1580], 강익(姜翼)[1523~1567], 오건(吳健)[1521~1574], 정복현(鄭復顯)[1521~1591], 조식(曺湜)[1526~1572], 임희무(林希茂)[1527~1577], 도희령(都希齡)[1539~1566], 변사정(邊士貞)[1529~1596] 등 많은 걸출한 인재들이 정희보의 문하를 거쳐 갔다.

[편찬/간행 경위]

정희보의 7대손 농와공(農窩公) 정몽조(鄭夢朝)가 1830년부터 사림의 뜻을 모아 실기 간행을 위한 작업을 시작하였으나 일을 마치지 못하였다. 이후 정희보의 후손이 정희보 문하생의 후손인 강병륜(姜秉輪)과 함께 편집한 원고 1책을 들고 유주목(柳疇睦)[1813~1872]을 찾아가 문집 간행 일을 아뢰고 서문을 청한다. 이에 응한 유주목은 1865년 서문을 지었다. 그러나 이때도 문집 간행은 이루어지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다시 정희보의 10대손 정대익(鄭大翊)이 할아버지의 뜻을 이어 마침내 1889년에 간행하였다고 전해진다.

[형태/서지]

『당곡정선생실기』는 선장(線裝) 2권 1책의 목활자본이다. 전체 크기는 27.7×18.5㎝이다.

[구성/내용]

『당곡정선생실기』의 권상에는 시 6제 7수, 「구사부(九思賦)」가 있다. 성리잡저(性理雜著)에는 「논심성설(論心性說)」, 「격치성정설(格致誠正說)」, 「예자설(禮字說)」, 「지자의(智字義)」, 「논사단칠정지발(論四端七情之發)」 등이 있다. 역학도상총론(易學圖象總論)에는 「논태극도상하도(論太極圖上下圈)」, 「오행생왕도(五行生旺圖)」, 「논형이상하(論形而上下)」 등과 함께 추록(追錄)이 실려 있다. 권하에는 부록으로 정희보의 연보를 개괄한 사실대략(事實大略)과 묘지명, 묘갈명, 만장, 제문, 제현찬술(諸賢讚述), 문인록, 고유문 등이 실려 있다.

[의의와 평가]

정희보는 영남 지역을 무대로 활동한 제현을 많이 배출한 학자이다. 정희보의 학문 깊이를 고구(考究)[자세히 살펴 연구함]하는 것은 경상남도 함양 지역 유림의 학문 연원을 고구하는 것과 같은 의미가 있으며, 영남학파 형성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관하여서도 조명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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