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05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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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咸陽鍾潭書堂 |
영어공식명칭 | Hamyang Jongdamseoda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농월정길 9-5[월림리 710-2]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권순강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864년 - 함양 종담서당 중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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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920년 - 함양 종담서당 중건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87년 - 함양 종담서당 중건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7년 12월 14일 - 함양 종담서당,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640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함양 종담서당,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 |
현 소재지 | 함양 종담서당 -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월림리 710-2[농월정길 9-5] |
성격 | 건물 |
양식 | 한식 목조와가 |
정면 칸수 | 5칸 |
측면 칸수 | 1.5칸 |
관리자 | 박민수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
[정의]
조선 중기 지족당 박명부가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월림리에 건립한 서당.
[개설]
박명부(朴明榑)[1571~1639]는 문신이지만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도 활약하였다. 예조참판으로 있을 때 병자호란이 발발했는데, 청나라와의 강화를 반대하였다. 청과의 강화로 낙향하여 농월정을 건립하였지만 다시 관직에 나가 예조참판, 한성좌윤, 도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지족당문집』이 있다.
[위치]
남강 상류 오른쪽 언덕의 자연제방[활주사면]에 위치하는데, 화림동계곡의 하류부이다. 종담서당에서 북쪽으로 약 240m 떨어진 화림동계곡에는 지족당이 건립한 농월정이 있다. 육십령로[국도26호선]에 접한 농월정 주차장 입구에서 북쪽으로 약 90m 지점에 있다.
[변천]
함양 종담서당의 창건 연대는 정확하지 않다. 하지만 박명부가 낙향하여 건립하였다는 것으로 보아 조선 중기에 건립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후에 멸실되어 1864년과 1920년에 중건되었고, 1987년에도 중건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상량문에는 “숭정오경신 황매절(崇禎五庚申黃梅節)……”이라 적혀 있어 1920년 봄에도 중수가 이뤄졌음을 알수 있다.
[형태]
함양 종담서당은 화림동계곡 근처의 평지에 동향하여 자리 잡고 있다. 정문과 대문채가 ‘二’자 형태로 배치되어 있다. 정당은 정면 3칸, 측면 1.5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평면은 왼쪽에서부터 툇마루 딸린 온돌방 1칸, 마루 2칸, 툇마루 딸린 온돌방 2칸으로 된 중당협실(中堂夾室)형이다. 온돌방 앞쪽에는 계자난간이, 대청과 온돌방 중간에는 사분합 들문이 설치되어 있다. 기단은 자연석을 사용하여 1~2단으로 쌓고, 초석은 자연석을 올렸다. 기둥은 원과 사각의 기둥을 혼용하였고, 공포의 양식은 대청 부분에는 소로수장집이고, 온돌방에는 장여만을 사용하였다. 도리는 둥근 도리를 사용하였고, 상부가구는 3개의 도리인 3량가이다. 지붕은 홑처마 팔작지붕이고, 한식기와로 마감했지만 막새는 보이지 않는다. 대문채는 정면 3칸의 솟을대문이다. 좌우 협칸의 지붕은 우진각지붕으로 마감한 것이 특징이다. 마당에는 지족당의 신도비가 세워져 있는데, 비좌는 거북 모양의 귀부형이고, 개석은 구름문양의 운수형(雲首形)이다.
[현황]
마당에 신도비가 있어 2018년 기준으로 서당의 기능보다는 문중서원처럼 보인다. 최근 수리가 되었으며 관리도 잘 되고 있다. 2017년 12월 14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640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함양 종담서당은 화림동계곡에서 농월정 및 신도비와 더불어 박명부와 관련한 대표적 건축이다. 2018년 기준으로 현재 서당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은데, 조선시대 교육문화의 한 단면을 알 수 있는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