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04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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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花山里遺蹟 |
영어공식명칭 | Hwasan-ri Ruins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화산리 871-11 |
시대 | 선사/석기,선사/청동기,선사/철기,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윤호필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4년 10월 28일~2005년 10월 15일 - 화산리 유적 발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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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화산리 유적 -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화산리 871-11 |
성격 | 유적 |
면적 | 4,191㎡ |
[정의]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화산리에 있는 신석기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의 복합유적.
[건립 경위]
화산리 유적에서 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 청동기시대 고인돌·집석·노지, 삼국시대 주거지·수혈·석곽묘 등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선사시대부터 줄곧 사람들이 거주하였던 곳이다.
[위치]
함양군 수동면 화산리 871-11번지 일대로, 연화산의 동남쪽 구릉 말단부에 있는 하안단구에 해당된다. 전면에는 죽산천과 남강이 합류하는 곳으로 넓은 충적지가 형성되어 있다. 섬동마을과 화산리 지석묘에서 동쪽으로 400m 정도 떨어진 곳이다.
[발굴조사 경위 및 결과]
화산리 유적은 부산지방국토관리청에서 추진한 ‘수동~안의 간 도로 확포장공사’ 구간에 해당되었으며, 경남문화재연구원에서 지표조사를 할 당시 처음에는 생활유적이 존재할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 후에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에서 시굴조사로 유적의 범위와 대략적인 성격을 파악하였다. 2004년 10월 28일부터 2005년 10월 15일까지 다시 발굴조사를 진행하여 신석기시대~삼국시대의 무덤 및 생활유적을 확인하였다.
[형태]
청동기시대와 삼국시대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신석기시대는 빗살무늬토기만 확인되었다.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7기, 집석 1기, 노지 3기도 확인되었다. 이 중 1호 고인돌은 긴 세장방형의 ‘묘역고인돌’로서, 묘역의 길이는 25.8m이고 너비는 4.28m이다. 묘역고인돌은 이 일대에서는 가장 큰 규모이며, 형태적으로도 매우 특이하다. 중앙의 상석은 마름모꼴로 길이가 230㎝, 너비가 125㎝ 정도이다. 삼국시대의 주거지 43기, 수혈 5기, 고상건물지 1기, 석곽묘 1기도 확인되었다. 주거지는 원형으로 내부에 부뚜막시설과 고래시설이 설치된 것이 특징이다.
[출토유물]
신석기시대의 태선침선문·압인문·압날단사선문 등의 빗살무늬토기가 확인되었다. 이런 문양은 신석기시대 전·중기에 걸쳐 나타나는 것으로, 기원전 3500년 전후에 해당된다. 청동기시대 유물로는 석촉과 무문토기편이 출토되었고, 삼국시대 유물로는 연질토기(軟質土器)·와질소성토기(瓦質燒成土器)·도질소성토기(陶質燒成土器) 등이 혼재하였다. 구체적인 출토 유물로는 고배·단경호·호·발·옹·시루·심발형토기 등이 있었는데, 대략 3세기 말~4세기 전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황]
화산리 유적은 발굴조사 후에 수동~안의 간 도로 확포장공사가 진행되어 국도3호선이 지나가며, 주변은 임야와 경작지로 조성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화산리 유적은 함양군에서 보기 드문 신석기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 이르는 복합유적이다. 또한 함양군에서 출토사례가 드문 빗살무늬토기가 출토되었고, 함양군에서 가장 큰 청동기시대의 고인돌이 확인되었을 뿐만 아니라, 청동기사회의 매장풍습과 위계화의 단면을 잘 반영하고 있었다. 삼국시대에 대규모의 취락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며, 원형의 집자리에서 부뚜막시설과 고래시설 같은 내부구조가 확인되어 당시의 생활사 복원에 매우 귀중한 자료가 확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