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03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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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桃峴院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화산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양훈 |
관할 지역 | 도현원 -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화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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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령과 제도 |
[정의]
조선시대에 경상남도 함양군에 있었던 관영 숙박시설.
[제정 경위 및 목적]
도현원(桃峴院)은 함양군의 사근역에서 동쪽 산청군을 넘나드는 도현 아래에 있었던 관영 숙박시설이었다. 도현원은 경상도 관찰사 등 주요 관리들이 함양·산청 지역을 순행할 때 숙식을 해결하거나 마필을 교체한 곳이었을 것이다. 도현원은 함양군과 산청군을 오가는 많은 여행객이 머물렀던 곳으로, 이곳에서 함양군·산청군 등지의 지방관리들의 공과를 평가하기 위한 주요 정보를 수집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관련 기록]
도현원은 『신증동국여지승람』 함양군 역원조에 “도현원은 도현 아래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여지도서』에는 “도현원은 도현 아래에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고 되어 있으며, 이후의 지리지에도 마찬가지이다. 이로 보아 도현원은 18세기 전반 이전에 폐지되었음을 알 수 있다.
도현원이 있었던 도현은 『여지도서』의 지도에는 사근역 이남에 있지만, 『대동여지도』에는 보이지 않고 대신 본통치(本通峙)가 적혀 있다. 도현과 본통치를 동일한 위치로 본다면, 도현원은 현재 함양군 수동면 화산리 본통삼거리 주변으로 비정할 수 있을 것이다.
[변천]
도현원의 설치와 폐지 시기에 대하여 알 수 있는 기록은 없다. 1469년에 편찬된 『경상도속찬지리지』 함양군 원우조에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그 이전에 설치된 것은 분명하다. 조선 건국 이후 전국적으로 원제(院制)를 지속적으로 정비하고 원 주변의 지방 유력가를 원주(院主)로 삼아 관리하게 한 점을 보면, 도현원도 이에 따랐을 것이다. 이후 도현원은 국가의 관리하에 운영되었을 것이다. 이것은 성종 대에 편찬된 『경국대전』에 전국의 원을 국가의 관리 아래에 두고, 국가가 각 원에 원전(院田)을 지급하여 경비와 급료로 충당하는 법령이 있는 것에서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국영화된 원은 작은 규모의 토지로 운영이 어려워지자 16세기 중반부터 점차 방치되었다. 임진왜란 이후 소실된 원은 복구되지 않았으며, 숙종조 이후에는 대부분의 원이 소멸된 것으로 전해진다. 도현원도 이와 같은 경향을 따라 늦어도 18세기 중엽 이전에 폐지한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도현원은 함양군의 역원과 옛길을 복원하는 데 있어 중요하게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