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02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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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廣與圖咸陽府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재현 |
[정의]
19세기에 편찬된 『광여도』에 수록된 함양부 지도.
[개설]
조선 후기에 편찬된 전국 군현지도집은 『광여도(廣輿圖)』·『해동지도(海東地圖)』·『여지도(輿地圖)』·『여지편람(輿地便覽)』 등이 있다. 19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광여도』는 사찬(私撰) 회화식 전국 군현지도집이다. 『해동지도』처럼 18세기 전반의 사정이 반영되어 있고, 상당수 군현지도의 윤곽도 비슷하다. 『광여도』가 『해동지도』와 다른 점은 안음현(安陰縣)이 수록되었다는 점과 마테오리치의 『산해여지전도(山海輿地全圖)』 계열의 지도가 『천하도(天下圖)』라는 이름으로 실려 있는 점 등이 있다. 『광여도』「광주부」 지도에서는 관아 건물이 있는 남한산성의 성곽과 건물을 상세하게 표현하고, 주변의 산천이 묘사되었으며 지역별로 중요하게 인식된 장소들이 간략하게 표현되었다.
[형태 및 구성]
『광여도』는 19세기 전반에 7책으로 제작된 전국 군현지도집이다. 지도집은 경기도[1책], 충청도[2책], 전라도[3책], 경상좌도[4책], 경상우도[5책], 평안도·황해도[6책], 강원도·함경도[7책] 도 지도와 군현지도 그리고 주요 군사적 요충지 지도를 포함하여 총 381장의 지도가 수록되어 있다. 「함양부」 지도는 경상우도에 수록되어 있다. 책 크기는 36.8×28.6㎝이다.
함양부는 지금의 안의면·서하면·서상면을 제외한 함양군 전체에 해당하며, 읍치는 함양읍 상림 일대에 있었다. 함양부의 아래쪽에는 지리산이 있으며, 서쪽은 팔량령을 경계로 전라북도 운봉현과 접해 있다. 고을의 동쪽으로는 남강이 흐르고 그 지류 임천강과 위천이 서쪽으로부터 흘러 들어와 합쳐지는데, 읍치 주변 위천가에는 제법 넓은 평지가 펼쳐져 있다. 읍치는 고을의 진산인 백암산으로부터 이어진 산봉우리 아래에 자리 잡고 있으며, 임진왜란 이후 토축(土築)으로 옮겨 쌓은 읍성이 표시되어 있다. 읍성 안쪽에는 함양 학사루가 보인다.
[특징]
지도에서 눈에 띄는 것 중의 하나는 이미 폐사(廢寺)되어 사라져 버린 사찰까지 자세히 표시되어 있다는 것이다. 무오사화 때 사망한 정여창(鄭汝昌)[1450~1504] 등을 배향하여 1566년(명종 21)에 사액받은 남계서원을 비롯한 총 5개의 서원과 수많은 정자가 표시되어 있어 양반 사회로서의 모습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또한 14개의 속역을 거느린 찰방역인 사근역이 월명총 옆에 표시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광여도』는 관찬(官撰)으로 제작되었던 『해동지도』와 달리 민간에서 제작된 군현지도집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본 지도의 경우 이미 폐사되어 사라져 버린 사찰까지 매우 자세히 표시하여 유교국가를 자부한 조선왕조에서도 여전히 살아 있는 불교의 영향력을 표현하고 있다. 또한 “옛날에 서울 장사꾼이 사근역 여인인 월명을 사랑하여 며칠 동안을 머물다가 갔는데 월명이 사모하다 병이 되어 죽자 그 뒤 장사꾼이 그 무덤에 가서 곡하다가 또한 죽어서 드디어 같은 무덤에 묻혔다”는 민간에 떠도는 반유교적 속설이 전해지는 월명총(月明塚)까지도 표시한 세심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