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200118
한자 文正里
영어공식명칭 Munjeong-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문정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미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변천 시기/일시 1914년 - 경상남도 함양군 엄천면에서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으로 편입
변천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도정동·문상동·문하동·견불동·백련동·고정동을 병합하여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문정리 개설
문정리 -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문정리 지도보기
성격 법정리
가구수 129가구
인구[남/여] 223명[남 106명, 여 117명]

[정의]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에 속한 법정리.

[명칭 유래]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문정리는 도정동(道正洞), 문상동(文上洞), 문하동(文下洞), 견불동(見佛洞), 백련동(白蓮洞), 고정동(高亭洞)을 병합할 때 대표 마을인 ‘문상’과 ‘도정’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것이라 한다.

[형성 및 변천]

문정리는 경상남도 함양군 엄천면에 속해 있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도정동, 문상동, 문하동, 견불동, 백련동, 고정동을 병합하여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문정리가 되었다.

도정동은 고려 말 이억년이 도정정사를 지어 강학한 곳으로 ‘도정정사’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지명으로 추정되는데 이 시기에 마을이 형성되었을 것이라 추정된다.

문상동과 문하동 지역은 숯을 구운 곳이라 하여 숯구지 또는 탄촌(炭村), 풍수지리적으로 거북이가 잠을 자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어 숙구지(宿龜地), 1489년(조선 성종 20) 문헌공(文獻公) 정여창이 쉬어간 마을이라 하여 문헌동, 훌륭한 문인이 태어날 곳이라 하여 문동(文洞), 정여창김일손이 다녀가면서 사람이 살 만한 곳이라 하여 가거동(可居洞) 등으로 불렸다고 한다. 그 중 문상동은 문하마을 위쪽에 있으며 먼저 형성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곳은 숯을 구워 생계를 유지하였다고 하며 고려 말 억년터에 이억년이 이곳에 집을 짓고 살면서 도정정사를 지어 강론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 시기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문하동은 문상마을 아래쪽에 있으며 문정리에서 으뜸가는 마을로 예로부터 학자들이 많이 배출되는 곳이라 하며 이곳에 초등학교와 중학교 분교가 있었으나 폐교되었다.

견불동은 점불이라고도 하는데 마을이 처음 생길 때 땅속에서 불상이 발굴되었다 하여 견불동이라 하기도 하고 마을 남쪽으로 보이는 와불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또한 견불사라는 절이 있었고 그 밑에 형성된 마을이라 붙여진 지명이라 한다.

백련동은 이백년이 터를 잡았고, 백년암을 지어 이백년의 명복을 빌었다고 하여 백년(白年)이라 하다가 백련(白蓮)으로 바뀐 것이라 한다.

고정동은 높은정이마을로 지반이 높으며 견불사 입구에 형성된 마을이다.

[자연환경]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문정리는 법화산[992.9m]의 남동사면에 있다. 법화산의 남쪽 능선이 서쪽 구양리와 경계를 이룬다. 법화산에서 발원한 하천들이 남동류하며 문정리의 남동쪽 경계부를 흐르는 임천으로 합류한다. 북쪽으로 법화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으며 남쪽으로 임천이 북동류하며 곡류하고 있어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이 나타난다.

[현황]

문정리는 2018년 8월 말 기준으로 문상마을에는 37가구에 64명[남자 32명, 여자 32명]이, 문하마을에는 44가구에 80명[남자 38명, 여자 42명]이, 백연마을에는 48가구에 79명[남자 36명, 여자 43명]이 살고 있어 총 129가구에 223명[남자 106명, 여자 117명]이 거주하고 있다. 문정리의 남동쪽 임천변을 따라 지방도60호선인 천왕봉로가 지나고 있다. 문하마을 남쪽으로 임천강을 건너 송전리운서리로 오가는 송문교가 있다. 대표적 명승지로는 와룡대가 있다. 문정리의 문상마을에서는 토종꿀·포도·배 등, 문하마을에서는 밤·흑돼지 등, 백연마을에서는 배·포도·토종꿀·전통된장 등이 대표적 특산품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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