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13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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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淳必孝子旌閭 |
영어공식명칭 | Stone Monument for commemorating virtue of Jeongsunpil in Hamyang Baekcheon-ri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백천리 899-3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연진 |
건립 시기/일시 | 1890년 - 정순필 효자 정려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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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 시기/일시 | 1928년 - 정순필 효자 정려, 비석 건립 |
현 소재지 |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백천리 899-3전 |
성격 | 정려 |
[정의]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백천리에 있는 개항기에 정순필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정려.
[위치]
함양군 함양읍 백천리 월명마을 연화사(蓮花寺) 입구의 도로변에 ‘정태원 시혜불망비(鄭台元施惠不忘碑)’와 나란히 서 있다.
[변천]
정순필(鄭淳必)[1819~1872]은 자는 윤찬(允贊)이고, 본관은 하동으로 정경업(鄭慶業)의 후손이다. 6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로 남은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어머니가 병에 걸리자 밤낮으로 간호하고, 대(臺)를 쌓아 자신이 어머니를 대신할 것을 북두성에 간절히 빌었다. 정순필의 간절한 노력은 마른 하늘에 폭우를 내리도록 하여 농어를 구할 정도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예를 다하고, 3년간 시묘(侍墓)살이를 하였다.
정순필은 지극한 효행으로 1890년(고종 27)에 동몽교관(童蒙敎官)으로 추증되고 정려를 받았다. 1928년에 건립된 비석의 비문은 춘추관 편수관(春秋館編修官)을 지낸 정승현(鄭承鉉)이 짓고, 청송(靑松) 심상복(沈相福)이 비문을 썼다.
[형태]
별도의 정려각은 없다. 방형의 기단 위에 석주를 세우고 울타리를 만들어 그 안에 있는 비석을 보호하고 있다. 비의 정식 명칭은 ‘효자 동몽교관 조봉대부 하동정순필지려(孝子童蒙敎官朝奉大夫河東鄭淳必之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