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13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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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徐儁孝行旌閭 |
영어공식명칭 | Stone Monument for commemorating virtue of Seojun in Hamyang Docheon-ri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 도천리 1055-3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연진 |
건립 시기/일시 | 1893년 - 서준 효행 정려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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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 도천리 1055-3 |
성격 | 비 |
양식 | 맞배지붕 |
정면 칸수 | 1칸 |
측면 칸수 | 1칸 |
[정의]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 도천리에 있는 서준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개항기 때 세워진 정려.
[개설]
서준(徐儁)은 어려서부터 효행이 뛰어났다. 7세 때 어머니가 병 중에 꿩고기가 드시고 싶다 하여 산에 올라 구했으나 구하지 못하였고, 통곡을 하자 꿩이 뜰에 떨어졌다. 그 꿩을 어머니께 요리해 드리자 효험이 있었다고 한다. 13세에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3년간 시묘(侍墓)하였다. 아버지의 병이 위독하자 하늘에 자신이 아버지의 병환을 대신하기를 빌었고, 그의 부인인 정씨가 손가락을 잘라 아버지를 소생시켰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역시 피눈물을 흘리며 시묘하였다. 부모가 모두 돌아가신 후에는 색깔 있는 옷은 입지 않고, 연회에 참석하지도 않았으며, 죽을 때까지 흰옷과 짚신으로만 생활하였다고 한다. 서준의 효행이 나라에 알려지자 1893년에 정려가 내려졌다.
[위치]
함양군 서상면 도천리에 있는 서상 중·고등학교 정문의 우측에 있다.
[변천]
경상도 유학자 최동화(崔東華)가 서준의 뛰어난 효행을 조정에 알려 1893년(고종 30)에 정려가 내려졌다. 정식 명칭은 ‘증조봉대부 동몽교관 달성서준지려(贈朝奉大夫童蒙敎官達城徐儁之閭)’이다. 정려를 세울 때 국가의 예에 따라 목재와 목수는 관청에서 충당하였다. 이와 관련해 예조판서, 참판, 참의, 정랑, 좌랑 등이 모여서 입안하고 수결했던 사실이 비문에 명시되었다.
[형태]
비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이고 비각 안에는 서준의 업적이 새겨진 비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