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12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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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題詠 |
영어공식명칭 | Composing a Poem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강정화 |
[정의]
경상남도 함양 지역에서 조선 시대에 지어진 한시 가운데 제목을 내어서 지은 작품.
[개설]
‘제영’이란 어떤 경관이나 사물·사건·서화 등을 한시로 표현한 모든 작품을 일컫는다. 따라서 넓은 의미로는 경상남도 함양과 관련하여 창작된 한시를 모두 포괄한다고도 볼 수 있다. 17세기 중반에 출간된 인문지리서인 『천령지』서문에 의하면 경상남도 함양 지역의 주요 인물로 최치원·김종직·정여창을, 주요 산천으로는 지리산과 뇌계천(㵢溪川)을 언급하였다. 대개 이와 관련한 제영이 많이 창작되었으며 그 외에 화림동 누정 중의 농월정을 읊은 작품이 특히 많이 나타난다.
[인물을 읊은 작품]
최치원과 관련한 후인의 한시는 학사루를 중심으로 수십 편이 보인다. 최치원이 41세 때 천령군수로 부임하여 관아 옆의 누각을 즐겨 오르곤 하였는데, 후인들이 그 누각을 ‘학사루’라 이름하였다. 후대에는 함양 객사의 부속 건물로 사용되었고 함양 지역의 유람 장소로 각광을 받았다. 학사루 관련 제영시의 내용은 대개 최치원을 ‘학자·시선(詩仙)·유선(儒仙)’ 등의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천파(天坡) 오숙(吳䎘)[1592-1634]의 「학사루」 시는 아래와 같다.
신라학사옥경선(新羅學士玉京仙) [신라의 학사이자 백옥경의 신선이시여]
일편부운거묘연(一片浮雲去杳然) [뜬 구름처럼 떠나가선 행적이 묘연하네]
방장지금루백척(方丈至今樓百尺) [방장산엔 지금도 백 척의 누각이 있어]
명월생학곡란변(月明笙鶴曲闌邊) [달밤엔 난간 가에서 생학 소리 들리네]
김종직과 관련한 시는 주로 그의 지리산 유람과 관련하여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그가 올랐던 코스를 따라 오르며 지은 기행시나 차운시가 많으며, 그때 동행하였던 문인 유호인과 조위를 아울러 언급하는 것도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학사루 시에서는 김종직과 유자광(柳子光)과의 일화 및 그로 인해 야기된 무오사화(1498)를 읊은 작품도 더러 보인다. 정여창과 관련한 한시는 남계(灆溪)서원을 중심으로 나타난다. 1552년에 강익(姜翼)을 중심으로 정여창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남계서원은 이후 경상남도 함양 지역민의 후학 교육과 향론(鄕論) 결집의 구심점 역할을 하였다. 경상남도 함양 지역뿐만 아니라 동방오현(東方五賢)의 한 사람으로 추앙받는 선현인지라 조선 후기까지 칭송하는 작품이 꾸준히 창작되었다. 이황[1501-1570]이 전국의 서원 10개를 선정해 읊은 「서원십영(書院十詠)」 중 남계서원에 대한 시는 아래와 같다.
당당천령정공향(堂堂天嶺鄭公鄕) [당당한 천령 지방은 정공의 고향이로다]
백세풍전영모방(百世風傳永慕芳) [백세토록 유풍 전해져 길이 흠모한다네]
묘원존숭진부첨(廟院尊崇眞不添) [사당에서 추숭함은 진정 더할 나위 없으니]
기무호걸응문왕(豈無豪傑應文王) [어찌 호걸 중 문왕을 보필할 이 없으리]
[산수 자연을 읊은 작품]
경상남도 함양의 산천을 읊은 작품으로는 지리산이 압도적으로 많다. 대개 김종직이 함양군수로 부임하여 지리산을 유람한 이후부터 그가 거쳐 갔던 유람로상의 장소가 창작의 소재가 되었고, 유람 당시 김종직이 읊은 한시에 차운한 작품도 많이 나타난다. 특히 ‘용유담(龍游潭)-군자사(君子寺)-하동바위[河東巖]-장터목-천왕봉’으로 오르는 백무동 일대는 지리산권 북쪽 권역의 대표적 유람 코스이다.
조선시대 내내 수많은 문인의 유람과 함께 엄청난 기행시가 현전하고 있다. 이 코스로 오른 후인으로는 금계(錦溪) 황준량(黃俊良), 청계(靑溪) 양대박(梁大樸), 감수재(感樹齋) 박여량(朴汝樑), 어우(於于) 유몽인(柳夢寅) 등이 있다. 이들은 백무동 일대의 명승을 오르며 당시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함양 명승의 변천 과정도 확인이 가능하다. 아래는 황준량이 1545년 4월에 천왕봉을 오르면서 용유담과 군자사를 아울러 읊은 「군자사동(君子寺洞)」 시이다.
일수중개양협웅(一水中開兩峽雄) [한 시내가 웅장한 두 협곡 사이로 흘러가니]
심산물색정춘풍(深山物色正春風) [깊은 산속의 물색은 바로 봄날의 풍모로세]
영원홀도심화객(靈源忽到尋花客) [신령한 근원까지 문득 꽃을 찾아 온 나그네]
옥동의봉채약옹(玉洞疑逢採藥翁) [선계에서 약초 캐는 노인을 만날 수 있을 듯]
착락기암승화장(錯落奇巖勝畫幛) [여기저기 기이한 암석은 병풍 그림보다 낫고]
홍징심두은신룡(泓澄深竇隱神龍) [맑은 못의 깊은 구멍엔 신령한 용이 숨은 듯]
청산여탈홍진몽(靑山如奪紅塵夢) [청산이 티끌세상의 내 꿈을 빼앗아간 듯하니]
호결소유차비종(好結巢由此秘蹤) [소부·허유와 잘 사귀어 여기에 자취 감추리라]
[화림동 농월정을 읊은 작품]
경상남도 함양의 화림동은 안의삼동(安義三洞) 중에서도 경관이 가장 빼어나다고 일컬어져 많은 문인들이 찾았다. 그중에서도 19~20세기에 이르면 특히 지족당(知足堂) 박명부(朴明榑)의 농월정이 유람지로 부상하였다. 박명부에게 음풍농월의 공간이었던 농월정이 이 시기에 이르면, 인근 원학동(猿鶴洞)에 있는 동계(桐溪) 정온(鄭蘊)의 모리재(某里齋)와 함께 지리산권 영남지역 지식인의 ‘춘추대의(春秋大義)’가 깃든 역사적 공간으로 의미 변화가 일어났다. 형식면에서는 박명부의 「농월정」 시에 차운하는 형태가 9할 정도이고, 아름다운 경관을 읊으면서도 그 속에 깃든 의미를 되새기는 내용으로 이루어졌다. 아래는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1846~1919]이 농월정에서 차운한 시이다.
동천화협위수유(洞天花峽爲誰幽) [동천의 아름다운 골짝은 누구를 위해 그윽한가]
인고정신일촉유(人古亭新逸躅留) [사람은 오래되고 정자는 새로운데 자취는 여전하네]
순이도신잠면박(殉以道身簪冕薄) [도를 좇아서 순절하였으나 관작은 가벼웠고]
담연생계수운부(淡然生計水雲浮) [담박한 생계는 물 위에 떠있는 구름 같았지]
모리청풍린옥각(某里淸風隣屋角) [모리의 맑은 바람이 지붕 모서리에 이웃하고]
전당제월양원두(前堂霽月讓源頭) [앞 당의 맑게 갠 달은 원두처를 사양하누나]
황허긍구비용이(荒墟肯構非容易) [황량해진 터에 세우려 하나 용이치 않으니]
종각문정유석류(從覺門庭有碩流) [알겠구나, 문호에 빼어난 인물 있어야 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