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12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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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員-虎茶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남호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한양하 |
[정의]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남호리에 김종직과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
[개설]
김종직이 목민관으로 지리산 야생 녹차밭을 조성하여 임금님께 진상하게 된 내력과 지리산 산신의 영험함을 가지게 된 녹차의 내력을 담은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2012년에 간행된 『함양군사』3권(함양군사편찬위원회)의 447-448쪽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차를 따면서 불렀던 차노래에 대한 유래가 있다. 김종직이 함양 군수로 있을 때이다. 당시 경상남도 함양군에는 차가 생산되지 않았지만 임금께 차를 진상하고 있었다. 경상남도 함양군에서는 임금께 진상하기 위해 양곡과 전라도의 차를 바꾸어 진상하고 있었다. 김종직은 이를 이상히 여겨 문헌을 찾고 노인들에게 물어보니, 지금은 차가 없지만 옛날에는 차를 재배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군수는 육방 관속들을 동원해서 차나무의 흔적을 찾게 하였는데 엄천사 부근 대나무 밭에 야생하는 차나무 몇 그루가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군수는 야생차나무를 캐어다 차나무 단지를 조성하였다. 재배한 지 몇 년이 되지 않아 부과된 진상량을 상납하고도 남아 인근에 팔기까지 하였다.
이때 한 아이가 지리산 차밭에서 차를 따고 있는데 산속에서 마을로 내려오던 호랑이가 아이를 업고 간 일이 있었다. 호랑이 굴로 잡혀간 아이는 죽었구나 싶었는데, 호랑이는 아이를 잡아먹지 않고 자식으로 길렀다. 아이는 호랑이가 고마워서 찻잎을 따다가 호랑이에게 주니, 호랑이는 찻잎을 맛있게 먹었고 둘은 의지하며 살아갔다. 차를 먹고 원기가 왕성해진 호랑이는 아이에게 온갖 고기를 다 구해 주었다. 그 후 호랑이는 아이를 집으로 돌려보내고 호랑이는 지리산 산신령이 되었다.
호랑이에게 잡혀가 죽은 줄 알았던 아이가 돌아오자, 마을 사람들은 호랑이가 즐겨 먹었던 차이니 ‘호차’라고 부르자고 하였다. 김종직은 차의 재배에 성공하여 “차를 만들어 성군의 장수를 빌고자 하는데, 신라 때부터 내려오는 유종임을 알지 못하고 늦게야 지리산에서 차를 얻어 백성들의 걱정을 덜어주니, 내 마음이 기쁘고 한이 없구나”라고 표현하였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원님과 호차」이야기는 세 가지 중요한 요소를 지니고 있다. 첫째는 지리산 야생차에 대한 기원, 둘째는 김종직의 목민관으로서의 면모, 셋째는 산신의 면모를 지닌 호랑이이다. 이를 통해 지리산 야생차의 신비로움을 더하고 있다. 지리산 야생차는 신라 시대에는 기록으로 남아 있었지만 조선 시대에는 없어진 것인데, 김종직의 노력에 의해 야생차 재배가 다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겨우 몇 그루에서 남은 야생차를 대규모 단지를 조성하여 집단 재배에 성공하였으며 현재에도 지리산 야생차가 명맥을 유지할 수 있게 된 유래에 얽힌 이야기이다.
「원님과 호차」이야기를 통해 목민관으로서의 김종직의 면모를 볼 수 있다. 재배되지도 않는 녹차를 임금께 진상하기 위해 백성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알았기에, 이를 해결하기 위해 문헌을 찾고 재배지를 조성하는 일을 벌인다. 백성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일을 바르게 처리하려는 목민관으로서의 면모를 볼 수 있다. 또 차를 따는 아이를 잡아가 해하지 않고 오히려 돌보아 준 호랑이는 이후 지리산 산신령이 되었다.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모습을 통해 지리산 야생차의 신성함과 영험함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