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11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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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傳統家屋 |
영어공식명칭 | Traditional House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송지환 |
[정의]
경상남도 함양군에 존재하는 전통건축 형식으로 건립된 가옥.
[개설]
경상남도 함양군은 영남지방을 대표하는 성리학자를 배출한 고장이다. 대표적인 인물로 경상남도 함양군 개평마을 출신인 일두 정여창[1450~1504]과 옥계 노진[1518~1578]이 있는데, 모두 함양군 개평리 출신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전통가옥은 개평마을의 고택들에서 그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대부분 안채와 사랑채 그리고 사당으로 영역을 구분하고, 안채와 사랑채를 중심으로 ‘ㅁ’자형의 배치를 구성하는 등 조선 시대 사대부 살림집의 전형을 보여주는 곳이 많다. 개평마을에는 일두 고택, 오담 고택, 노참판댁 고가, 풍천노씨 대종가, 하동정씨 고가 등이 남아 있다.
[현황]
함양 일두 고택은 조선 성종 때 대학자인 정여창의 옛집으로 지금의 건물은 조선 후기에 대부분 다시 지은 것이다. 대문채, 사랑채, 안채, 곳간채, 사당 등으로 ‘ㅁ’자형의 배치구성을 보이며, 사랑채 앞에는 석가산을 조성하였다. 조선 중기 사대부 살림집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인다.
함양 오담고택은 함양 일두 고택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정여창 12세손인 오담 정환필이 기거한 집으로 18세기 중후반에 지었다. 사랑채와 안채 등으로 구성되며, 특히 사랑채 대청마루에 신주를 두어 대종가에서 분가한 양반 계층의 주거 모습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풍천노씨 대종가는 개평마을 입구 왼쪽에 있다. 맨 처음 마을에 들어와 터를 잡은 조상인 송재 노숙동이 처가인 경상남도 함양군에 자리 잡으면서 지은 집이다. 현재 건물은 순조 때 건립된 것이며 1940년대에 중수하였다. 풍천노씨 대종가는 남부 지방의 개방적인 한옥의 특징이 잘 나타나며, ‘ㅁ’자형 배치를 보인다. 풍천노씨 대종가임에도 공간구성이 약하고 영역 구분이 모호한 점 등은 하동정씨 고택들과의 차이점이다.
함양 노참판댁 고가는 개평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대문채, 사랑채, 안채, 사당 등이 남아 있다. 대표적인 양반집으로 호조참판을 지낸 노광두[1771~1859]가 살던 곳이기도 하다.
함양 개평리 하동정씨 고가는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61호로, 큰길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있다. 대문채를 지나 넓은 마당을 두고 안채가 자리하는데, 정면 여섯 칸과 측면 한 칸의 ‘一’자형 건물로 300년 이상 되었다.
함양 허삼둘 고택은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에 있다. 이 가옥은 진양의 갑부였던 허씨 문중의 허삼둘이 토호인 윤대홍에게 시집와서 지은 집으로 안채의 구성이 특이하다. 일제 강점기인 1918년에 지어졌음에도 당시의 시대상에서 과감히 탈피하여 여성 중심의 공간배치가 이루어졌다. 특히 부엌으로 출입하는 통로가 전퇴를 열고 토상화(土床化)한 것이 특이하며, 학술적인 자료로도 중요한 가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