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09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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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上無住庵 |
영어공식명칭 | Sangmujuam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기관 단체/사찰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마천삼정로 544-342[삼정리 952]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 |
집필자 | 배상현 |
건립 시기/일시 | 861년 - 상무주암 창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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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수|중창 시기/일시 | 1171년 - 상무주암, 보조국사 지눌이 중건 |
중수|중창 시기/일시 | 1954년 - 상무주암,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곳을 토굴 형태로 복원 |
현 소재지 | 상무주암 -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마천삼정로 544-342[삼정리 952] |
성격 | 사찰 |
창건자 | 영원조사 |
[정의]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 해인사 소속 사찰.
[건립 경위 및 변천]
상무주암(上無住庵)은 861년(신라 경문왕 1)에 영원조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 중기에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1158~1210]은 선객의 벗 몇명과 함께 상무주암에 머무르며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고려 후기 문신 김군수(金君綏)가 찬한 지눌 비문 「불일보조국사비명(佛日普照國師碑銘)」에는 당시 사정에 관하여 “경계는 그윽하고 고요하여 천하에 제일이어서 참으로 편안히 참선하는 이가 머물만한 곳이었다. 그리하여 바깥 인연을 물리쳐 버리고 오로지 마음을 관찰할 때에 갈고 닦아 날카로운 지혜를 내고 깊은 뿌리에까지 들어갔다. … (중략) … 『대혜보각선사어록(大慧普覺禪師語錄)』를 얻었는데 거기에 ‘선정은 고요한 곳에도 있지 않고, 또 시끄러운 곳에도 있지 않으며, 날마다 반연에 응하는 곳에도 있지 않고 생각하고 분별하는 곳에도 있지 않다. 그러나 먼저 고요한 곳이나 시끄러운 곳이나 날마다 반연에 응하는 곳이나 생각하고 분별하는 곳을 버리고 참구(參究)[참선하며 진리를 탐구함]하지도 말아야 한다. 만일 갑자기 눈이 열리면 비로소 그것이 집안 일임을 알 것이다’ 하였다. 나는 거기서 가만히 그 뜻을 깨치게 되었다.”고 전한다.
지눌 이후 상무주암에서는 원감국사(圓鑑國師) 충지(冲止)[1226~1293]가 수행하였다. 「원감국사비명」에 따르면 원감국사는 1284년부터 1286년까지 약 2년 동안 머물다 원오국사(圓悟國師) 천영(天英)[1215~1286]를 이어 수선사의 제6세 사주(社主)가 되었다. 그러나 유서 깊은 상무주암은 6·25전쟁 때 무장공비 토벌작전 와중에 소실되었다. 이후 1954년 토굴 형태로 복원되었고, 현재의 당우(堂宇)[정당(正堂)과 옥우(屋宇)라는 뜻으로, 규모가 큰 집과 작은 집을 아울러 이르는 말]는 그 후에 중창을 거친 것이다.
[활동 사항]
상무주암은 삼정산(三丁山, 三政山)[높이 1,225m] 능선에 자리하고 있어 승려 수행처로 각광받고 있다. 고려 시대 보조국사와 원감국사가 머물다 간 곳으로, 지금까지도 많은 불자의 순례지가 되고 있다.
[현황(조직,시설 현황 포함)]
현존하는 당우로는 법당과 산신각이 있다. 법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인법당(因法堂)[큰 법당이 없는 절에서 승려가 거처하는 방에 불상을 모신 집] 형태이며, ‘상무주(上無住)’라 편액하였다. 법당 뒤편에 있는 산신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이다. 법당 동쪽으로 삼층석탑 1기가 자리하고 있다. 탑은 2중으로 된 기단석 위에 1층 탑신만 있고 2층과 3층은 지붕돌만 올린 형태이다. 고려 말 고승 각운(覺雲)의 필단사리탑(筆端舍利塔)으로 전한다. 각운이 『선문염송설화(禪門拈頌說話)』 30권의 저술을 완료하였을 때 붓통 속에 떨어진 사리를 봉안한 탑으로, 서광을 발하였다고 전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