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08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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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河在衍 |
영어공식명칭 | Ha Jaeyeon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
시대 |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고은영 |
출생 시기/일시 | 1866년 11월 29일 - 하재연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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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2일 - 하재연, 함양장터에서 만세운동에 참여 |
몰년 시기/일시 | 1940년 7월 26일 - 하재연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06년 8월 15일 - 하재연, 대통령표창 추서 |
출생지 |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도천리 64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함양장터 3.1만세운동 참여 |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독립운동가.
[가계]
하재연(河在衍)[1866~1940]의 본관은 진양이다. 아들은 독립운동가 하승현(河升鉉)[1895~1919], 동생은 하재익(河在翼)[1883~1922]이다. 1866년 11월 29일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도천리에서 태어났다.
[활동 사항]
하재연은 1919년 4월 2일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장터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에 앞서 3월 28일에 있은 만세운동을 주동한 정순길(鄭淳吉)[1896~1962]·윤보현(尹普鉉)·정순귀(鄭淳貴)·노경식(盧璟植) 등 4명이 일본 헌병에게 체포된 사실에 분개한 김한익(金漢益)[1890~1933]이 다시 한 번 함양읍 장날 의거를 계획하였고, 하재연은 4월 2일 아침 자택에서 태극기를 만든 후 오후 5시쯤 장터에서 태극기를 휘두르며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시위를 전개하였다. 주동자인 김한익이 체포되자 일본 헌병분견소에서 석방 요구 및 시위를 진행하던 아들 하승현이 일본군에게 피살되어 순국하였고, 이를 살피기 위하여 접근하던 하재연도 총격을 받아 부상하였다. 이때 동생인 하재익도 부상하였다.
[상훈과 추모]
2006년 3·1운동의 공훈을 기려 대통령표창에 추서되었다.